책이름 : 사생활의 천재들
지은이 : 정혜윤
펴낸곳 : 봄아필
여행에세이 『여행, 혹은 여행처럼』, 『퇴사는 여행』 그리고 인문주의자 인터뷰 모음집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에 이어 『사생활의 천재들』은 나에게 CBS라디오 PD․독서가 정혜윤의 네 번째 책이었다. 카피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라는 카프카의 말이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사소한 일상, 곧 사생활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책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여덟 명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1. 박수용(1964- ) 자연다큐멘터리 감독. 야생의 시베리아 호랑이를 1,000시간 영상으로 기록한 7편의 다큐멘터리 제작. 숲을 걸으면서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종에 다 해당되는 규칙이 있을 거란 생각. 초교 4년부터 고교 2년까지 7년 동안 소몰이꾼으로 일주일에 나흘을 오후 4시에서 새벽 4시까지 밤새도록 걸어 오일장을 떠돌던 시절. 꽃 이름을 아는 것보다 어디선가 꽃이 피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 비트는 호랑이를 보는 곳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보는 곳. ‘자연 속에서 먹고사는 것이 힘들지 않는 개체는 없습니다. 자연은 투쟁하지만 정도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그 정도를 넘어섭니다.’(67쪽)
2. 변영주(1966- ) 영화감독. 위안부 생활을 했던, 폐암 말기 3개월 시한부 인생 강덕경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의 주인공. 영화로 표현하는 한편 세상을 향해서 시민 변영주로, 영화 끝나고 제일 하고 싶은 것은 ‘희망버스’ 타는 것.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든 위로 받고 싶어 하는거, 그게 아주 독입니다. 그건 끔찍하고 비겁한 일입니다.’(93쪽)
3. 윤태호(1969- ) 만화가. 만화에서 칸과 칸 사이의 여백은 너무나 중요, 그 사이에 독자들은 무슨 생각을 한다. 어려서부터 피해의식 때문에 눈치 보느라 남을 많이 생각한 것이 스토리를 쓸 때 어떤 도움이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마이너의 애달픈 시선이 있다. ‘만화를 그리면서 저는 점점 더 깊은 내적인 기쁨이란 것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147쪽)
4. 김산하(1976- ) 우리나라 최초 야생영장류 학자. 인도네시아 누룽 할리문 국립공원 자바긴팔원숭이 연구. 기존의 데이터 중심의 정량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에 투신하지 않기로 결정. 영장류의 특징은 호기심과 지루함의 반복. 하나의 생명은 그 서식지에 대한 사랑의 표현, 하나의 생명은 그 서식지가 낳은 철학.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밀고 나가려면,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소중한 존재로서 인정받았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185쪽)
5. 조성주(1978- ) 청년운동가. 경제민주화2030 공동대표. 청년들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 창립. 슬픈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을 하는 게 제일 좋겠다는 생각,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약자들은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 필요,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너무나 깊게 뿌리박혀 있기 때문.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데 똑같이 아팠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 것을 덜 받을 수도 있는 게 인간입니다.’(222쪽)
6. 엄기호(1971- ) 사회학자. 가톨릭연합회 아시아-태평양사무국(필리핀 마닐라) 시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정말 적나라하게 봤던 시기. 하층민이 아무리 어려워도 사회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사회가 개인의 삶을 보호하지 못할 때 허무함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공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 만하도록 삶의 터전을 지키고 가꾸는 일’(246쪽)
7. 홍기빈(1968- ) 정치경제학자. 돈이 있는 사람에게나 ‘노마드’지, 돈 없는 사람에겐 자유란 끔찍한 것, ‘프리랜서’란 말도 마찬가지. 자기계발서들은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에게 솜사탕을 주는 것. ‘이 세상이 바뀌는데 몇 백년이 걸릴 지 모르지만 모래알 한 톨의 힘일지라도 기여란 걸 해보고 싶었습니다.’(284쪽)
8. 정병호 횡성 천문인마을 천문대장. 우리가 보는 작은 빛이 실은 몇 천억 개의 수많은 별들이 모여 있는 곳. 파로호 근처에 사는 노인의 말 “얼음이 얼기 시작하면 얇아도 절대 깨지지 않는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두꺼워도 금세 깨진다.” ‘지구가 그리고 우리 지구인이 우주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에 놀라며 겸손해하는’(315쪽)
마지막은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로 존 버거의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中에서, ‘허무주의는 정확히 말해 세상의 모든 것이 가격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다. 허무주의는 가격이 전부라는 주장 앞에서의 체념과 굴종이다. 그것은 인간의 비겁함을 가장 현재형으로 보여주고 있다.’(273-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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