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순한 먼지들의 책방
지은이 : 정우영
펴낸곳 : 창비
시인 정우영(鄭宇泳, 1961- )은 1989년 『민중시』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력詩歷이 35년이 되었다. 『순한 먼지들의 책방』은 다섯 번째 시집이었다. 평균 7년에 시집 한 권을 상재하는 과작의 시인이었다. 나에게 『집이 떠나갔다』(창비, 2005), 『살구꽃 그림자』(실천문학사, 2010)에 이어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었다.
4부에 나뉘어 57편이 실렸다. 시인 진은영은 추천사에서 시인을 “영원하고 순한 사랑을 믿는 이”라고 했다. 문학평론가 소종민은 해설 「고요하고 낮고 자잘한 생명의 거처」에서 “고향으로, 흙으로, 나무와 꽃으로, 아스라한 기억으로, 그을음이나 실금 같은 것으로, 나풀거리거나 미약하거나 금세 없어지는 것으로 기울어져 있다”(99쪽)고 말했다.
삶을 바라보는 선한 마음과 약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이 시편마다 맑고 아름다운 잔상으로 남겨졌다. 길가 운동기구 타는 치매 엄마와 딸의 대화, 숨 놓은 막둥이를 지게로 묻고 오는 용기 아버지, 밤 깊어 아궁이 불 지피는 뒷방 고모,독바우 소나무에 목을 매단 하얀저고리 각시, 임종한 아내의 손때 묻는 뻐꾸기시계, 귀 잡순 행촌 아저씨 등 고향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1부의 시들.
큰 평전의 참꽃, 서산 마애삼존불과 직박구리, 할아버지와 산죽, 슬리퍼 수선하는 할아버지, 동자석, 구룡포 소라국시, 돌탑과 차돌, 멀어져가는 막내고모, 1951. 3. 14-16 임실군 청웅면 폐광굴 분화焚火 양민학살사건 등 약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의 3부 시편들에 나의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활에 기대다』(반걸음, 2018)이후 6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은 삶과 죽음, 필연과 우연 등 깊은 성찰과 사색이 펼쳐졌다. 마지막은 「끝집」(84쪽)의 전문이다.
걸어도 걸어도 까막까막 멀어지는 집 / 장딴지는 땅기고 허리가 허물어질 즈음 / 흐느낌처럼 가녀린 빛 새어 나오지 / 산골짝 청계동 우리 동네 끝집 / 서러움이 가라앉는 집 / 인정이네 집이 서울에 왔어 / 오촉짜리 불빛만으로도 허기가 꺼지는 집 / 김은 입천장에 붙어서 무섭다던 / 인정이는 여릿여릿 살가웠지 / 제기동 골목길 끝 모서리 / 폐자재로 얼기설기 엮은 무허가 단층집 / 촛불 등 하나 내걸린 고양이 집 / 희미하게 환한 저 끝집 / 왼갖 생명붙이들 숙어드는 첫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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