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

대빈창 2025. 4. 24. 07:00

 

책이름 : 철학으로 읽는 옛집

지은이 : 함성호

펴낸곳 : 열림원

 

함성호는 1990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면 문단에 나왔다. 시력 35년의 중견시인이었다. 1991년 건축 전문지 『공간』에 건축평론이 당선되었다. 건축설계사무소 EON을 운영하는 건축가였다. 거기다 만화에 관한 책을 썼고, 각종 문화행사 기획도 하고 있다. 가히 팔방미인이라고 부를 만 했다. 『철학으로 읽은 옛집』은 시 쓰는 건축가가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지은 옛집을 답사, 고졸한 멋의 옛집과 그 집을 둘러싼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 시로 지어진 건축 독락당獨樂堂.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독특한 건축가. 조선 철학을 리理 중심으로 파악한 선구적 성리학자. 독락당은 옥산에 있는 사랑채의 이름. 우리 집의 이름은 언제나 사랑채의 이름이 그 집의 당호. 중종25년 탄핵을 받아 벼슬길에서 쫓겨나 고향에 내려와 지은 집이 독락당. 이언적이 나이 40세에 절치부심하던 가장 불우한 시절을 보냈던 집. 집 주변의 산과 냇가의 바위들은, 건축가가 거기에 이름을 붙이자마자 그대로 정원이 되고 자연의 정자가 되며 병풍이 된 사산오대四山五臺.

2. 은유와 상징의 집 양동良洞마을의 향단香壇. 양동마을은 ‘물勿’자 형국의 길상吉相 지세. 향단은 한국건축에서 유일하게 조각하듯이 건축된 특이한 수수께끼 같은 건축. 회재가 복권되어 경상감사를 제수받고 금의환향하여 지은 집. 향단은 전체적으로 ‘용用’자형 평면으로 세 개의 박공은 ‘用’ 자에서 아래로 삐쳐 나온 세 개의 획, 북서에서 남동으로 흐르는 산세를 남으로 방향을 다시 잡아 흐르게 하는 상징적인 산세를 구현. 향단의 행랑채는 살림집에 딸린 기능보다 관청의 기능까지 담당했던 사랑채를 위한 기능.

3. 칼빛, 방울소리 산천재山天齋.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이 만년 58세에 정착.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한칸씩 있는 방은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정도로 비좁은. 호號 남명은 『장자』에서 따왔고, 삼가三嘉의 뇌룡정雷龍亭이나 계복당鷄伏堂은 노자의 용어. 남명은 노장의 깊이 있는 학문적 계승자, 그 실천적 측면을 간파한 천재적인 인사. 남명은 산천재를 지리산 전체와 연결하고 그 상징성을 천왕봉에 둔,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

4. 철학의 정원 도산서당陶山書堂.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건축물을 남긴 철학자. 도산서당은 가장 완숙한 한 철학자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현실적 장소. 세 가지 켜가 존재하는 도산서당의 영역, 대청마당의 정우당淨友塘, 대문마당의 몽천夢泉, 그리고 대문 밖 입구의 열정列井으로 인공 연못과 우물들이 도산서당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 퇴계는 그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건축 조영에 적용시켰고 주자朱子의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모범으로 건축.

5. 해상의 도학자 고산孤山 윤선도. 해남과 보길도에 걸친 전대미문의 해상정원을 이룩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 보길도甫吉島의 꽃의 수술 자리를 부용동芙蓉洞이라 명명, 격자봉 곁에 집을 지어 편액은 낙서재樂書齋. 고산은 풍수지리로 부용동의 지세를 잡고 음양오행으로 세연정의 정원을 조성. 계류의 상류에서 하류로 이어지는 세연지와 인공적인 방지 회수담의 두 연못 가운데 앉힌 세연정. 동천석실은 세연정의 음양 원리가 만들어낸 고산 개인의 이상향으로 상징화된 당호.

6. 이곳에서 노래 부르고, 이곳에서 곡하리라 다산초당茶山草堂. 생애동안 5백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긴 다산茶山 정약용(鄭若鏞, 1762-1836). 18세기말에 건설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도시 수원성 계획을 주도.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다산초당, 그 옆에 집 크기 만한 연못, 초당을 지나쳐 조금 높게 자리 잡은 동암. 절박함을 학문적으로 승화해 치밀하게 경영해나간 한 인간의 놀랍도록 거대한 긍정의 세계를 보여준 다산초당.

7. 한 현실주의자의 포석 김장생의 임이정臨履亭. 조선 예학의 종장宗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1626년, 그의 나이 79세에 세운 정자. 율곡 이이로부터 시작되는 조선 성리학의 주기론을 가장 충실히 계승한 적자. 강경읍과 황산벌의 전체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는 금강이 휘돌아나가는 남쪽 암석지대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 평면을 셋으로 나누고 그 둘을 대청으로 하나를 온돌방으로 구획하고, 다시 온돌방을 셋으로 나누고 둘은 온돌로 하고 하나를 마루로 계획한 기능과 아름다움을 통합.

8. 암중모색暗中摸索의 집 팔괘정, 우암고택, 암서재, 남간정사. 격변·혼돈의 시대를 살다 간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스승 김장생의 임이정이 지척으로 바라보이는 장대한 바위 옆에 지은 팔괘정八卦亭. 1651년 파직을 당해 1653년에 지은 집, 대전 소제호蘇提湖 인근에 살림집 우암고택尤庵古宅과 소제 방죽을 쌓고 연못가에 지은 작은 정자 기국정杞菊亭. 1666년에 지은 화양동 계곡의 하늘만 빼고 온통 바위투성이인 작은 강학공간 암서재暗棲齋. 1683년 77세에 지은 흥농촌興農村 능인암能仁庵아래 흐르는 물 위에 대청마루를 놓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파격적인 배치의 남간정사南澗精舍.

9. 다각적 추론의 집 윤증고택. 단 한 번도 벼슬하지 않은, 재야에서 서인 소론을 이끈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이 81세에 지은 집. 주자근본주의 시대에 탈주자학의 길을 걸었던 명재가 지은 가장 편안한 집.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집 리은시사離隱時舍. 동학혁명, 한국전쟁 때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흉년이 들면 마을에 공사를 일으켜 그 노임으로 쌀을 지급하고, 추수 때는 나락을 길가에 두어 배고픈 마을 사람들이 가져가도 모른 체한 윤씨 가문의 가풍.

건축하는 시인은 말했다. “조선의 건축을 말할 때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자연과 건물이 한 몸을 이루는 통합적 인식으로, 자연과 문명의 극적 일치가 철학적 건축, 혹은 철학의 몸으로써 건축이라는 세계 건축사에도 유례가 없는 예를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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