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인생
지은이 : 이승훈
펴낸곳 : 민음사
나의 블로그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저자는 고전인문학자 정민 선생이었다. 2021년 정초 고전인문학자의 산문집 『사람을 읽고 책을 만나다』에서 시인을 만났다.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고전인문학자는 시인을 이렇게 평했다. “일상을 읊은 詩가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이. 승. 훈. 이름 석자가 나의 뇌리 한구석에 또아리를 튼 것이다. 〈길상작은도서관〉의 시집을 검색하다가 만났다.
이승훈(李昇薰, 1942-2018) 시인은 향년 77세로 돌아가셨다. 시인은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시학의 대표주자로 ‘비대상 시’를 관철했다고 한다. 『모더니즘 시론』, 『해체시론』 등의 연구서를 낸 문학평론가였다. 시인은 서정시·순수시 또는 ‘시의 본질’에 관해 거부감을 격렬하게 드러냈다.
“사유는 결국 미친 짓이죠. 무슨 영혼, 진리 따윈 버리세요”
“그저 언어가 있으므로 시를 쓴다”
“현대시는 끝났어. 이젠 모두가 시이고 모든 게 가능해”
“결국 난 시를 쓰지 않으려고 시를 쓴다”
시집은 추천사·발문·해설 어느 한 가지도 없었다. 달랑 3부에 나뉘어 65 시편이 실렸을 뿐이다. 그동안 발표한 시가 38편, 신작 시가 27편이었다. 자서自序에서 말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를 거쳐 불교와 만나게 된 것 고마운 인연이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서울에 오는 눈」(13쪽)의 전문이다.
서울에 오는 눈이 춘천에도 오고 / 춘천에 오는 눈 속엔 누가 있나 / 춘천에 오는 눈 속엔 춘천이 있 / 고 서울에 오는 눈 속엔 서울이 / 있네 서울에 오는 눈이 진주에도 / 오고 부산에도 오고 수원에도 오 / 네 오늘 하루종일 내리는 눈발 / 속에 하루가 내리고 오늘 오는 / 눈은 어제 오던 눈 이 눈 속에 / 눈 속에 내가 있네 눈은 내리고 / 눈발 속에 내가 사라지네 눈발이 / 나를 덮네 간절함도 애절함도 눈 / 발에 파묻히는 불빛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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