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얼음의 자서전

대빈창 2015. 8. 21. 07:00

 

 

책이름 : 얼음의 자서전

지은이 : 최승호

펴낸곳 : 문예중앙

 

대설주의보(시집 / 민음사 / 1983년)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시선집 / 도요새 / 2000년)

반딧불보호구역(시선집 / 뿔 / 2009년)

북극 얼굴이 녹을 때(시집 / 뿔 / 2010년)

아메바(시집 / 문학동네 / 2011년)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시집 / 난다 / 2013년)

얼음의 자서전(시선집 / 문예중앙 / 2014년)

 

내가 잡은 시인 최승호의 시집들이다. 나의 시인 접속 지점은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였다. 환경운동연합이 운영하는 출판사 ‘도요새’가 펴낸 문고판 1차분으로 나온 생태시선집을 끈질기게 수소문 한 끝에 책이 나온 지 13년 만에 손에 넣었다. 책술은 누렇게 바래가면서 나뭇색깔을 찾아가고 있었다. 연이어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씩 섭렵했다. 이 시선집은 두 개의 서문이 달렸다. 2005년 ‘세계사’에서 초판본이 출간되었다. 해설은 없고, 부록으로 「시인 연보」와 「작품 출전」이 실렸다. 시편은,

1부 - 44편 ; 『대설주의보』,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 『세속도시의 즐거움』

2부 - 54편 ; 『회저의 밤』, 『눈사람』, 『여백』, 『그로테스크』

3부 - 47편 ; 『모래인간』,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고비』, 『반딧불보호구역』, 『북극 얼굴이 녹을 때』

에서 선정하였다. 편집진의 착오가 눈에 뜨였다. 시인의 첫 시집 『대설주의보』는 출판사가 ‘세계사’가 아닌 ‘민음사’가 맞다. 내가 시인을 좋아하게 된 단초를 시인 연보에서 찾았다. 나는 생태시선집을 잡고 시인의 시세계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시인은 1997년부터 10년간 환경단체 〈환경연합〉에서 펴내는 월간지 《함께 사는 길》의 편집주간을 맡았었다. 아르헨티나 작가 길예르모 사코만노는 《파히나 12》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인의 시는 소비주의에 물든 한국 사회에서의 시의 역할에 대한 묵상”이라고.

 

그는 심판관을 믿지 않는다 / 판정승을 기대하지 않는다 / 심판관은 쉽게 매수되기 때문이다

그는 심판관을 믿지 않는다 / 판정승을 기대하지 않는다 / 이 점에서 무신론자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벌거벗은 채 / 승부욕이 강하게 싸운다 / 이 점은 순교자와 같다

서로 좋게 승리로 이끈다면 얼마나 좋으랴 / 그가 뛰는 링은 종종 피범벅이다 / 이 점은 불란서 혁명과 같다

마빈 해글러는 세계 챔피언이다 / 하지만 죽음의 왕 앞에선······ / 이 점은 불쌍한 투우와 같다

 

‘권투왕 마빈 해글러’(32 ~ 33쪽)의 전문이다. 가난한 시절.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80년대 초반, 대학진학이 가난으로 막혀 시골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리던 촌놈에게 빡빡머리 ‘링의 도살자’ 마빈 해글러는 영웅이었다. 이 시는 마빈 해글러의 복싱 인생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마빈 해글러는 1954년 미국의 손꼽히는 빈민가 뉴저지주 뉴아크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변두리의 갖은 설움을 이겨내고 1979년 11월 30일 대망의 세계 미들급 통합타이들 도전 기회를 잡았다. 그때까지 전적은 48전 45승(20KO) 3패 1무였다. 여기서 무승부와 패배는 주류의 편파판정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이없는 무승부였다. 해글러는 결심했다. “절대 심판을 믿지 않겠다. 이 끝없는 편견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뿐이다.” 1980년 9월 27일 적지에서 챔피언 알란 민터를 3회 TKO로 눕혔다. KO 퍼레이드 방어전은 그에게‘Marvellous’(경이로운 챔피언)이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안겼다. 이후 ‘파나마의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 ‘디트로이터의 저격수 ’ 토마스 헌즈, ‘우간다의 맹수’ 존 무가비를 연이어 꺽고 살아있는 링의 전설이 되었다. 1987년 초봄 슈거레이 레너드와 세기의 대결을 펼치나 프로모터의 횡포로 판정패한다. 이에 마빈 해글러는 영원히 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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