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그림자
책이름 : 살구꽃 그림자
지은이 : 정우영
펴낸곳 : 실천문학사
황송하게 시인님이 블로그를 찾아 주셨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집이 떠나갔다』의 리뷰를 올리고 나서였다. 나는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살구꽃 그림자』는 품절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마음 여린 시인은 주소를 남기면 시집을 보내겠다고 배려를 베풀었다. 아! 나의 급한 성미가 문제였다. 며칠 전 온라인 중고서적에서 구입한 시집이 택배로 도착했다. 시인의 자필서명이 든 시집을 손에 넣을 기회를 놓쳤다. 내가 사는 주문도는 낙도오지로 배송료가 추가되어, 새 시집보다 오히려 중고시집이 더 비쌌다. 손때가 안 타 말짱한 헌 시집을 아꼈다가 이제 손에 들었다.
1989년 〈민중시〉로 문단에 나온 시인은 등단 21년 만에 세 번째 시집 『살구꽃 그림자』를 상재했다. 올 여름에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활에 기대다』가 〈반걸음〉에서 나왔다. 7년에 1권을 올리는 과작(寡作)으로 시인은 천민자본주의의 속도를 거스르고 있었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15편 씩 모두 60시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박수연의 「유령들의 시간」이다.
그러다가는 또 정보기관의 끄나풀 아닌가 싶었지요. 한때 내가 몸담았던 조직이 부활하나 싶을 정도로 그것은 집요했거든요.
「고향의 그림자」(77쪽)의 단락을 읽으며, 나는 30여년 저쪽의 세월을 떠올렸다. 시인은 그 시절 치열하게 현실을 헤쳐 나갔다. 《노동해방문학》 편집인으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지천명을 넘기면서 시인은 흙과 고향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시인의 말」의 도입부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시간과 기억들에 나는 들려 있다. / 한동안 나를 지탱해준 힘들은 이들에게서 나왔다. / 아무것도 아니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인 그 무엇들이 나를 이끈다.
시집의 앞뒤 면지 흑백 무늬가 눈길을 끌었다. 〈실천시선〉의 디자인은 안상수 시각디자이너의 작품이다. 디자이너는 한 권의 시집 디자인을 위해 시인의 고향을 찾아 전국을 순례했다. 정우영 시인의 고향 전북 임실의 생가 부엌 흙벽에서 수저에 담은 그을음을 뒷면지에 넣었다. 생가 뒤 대숲은 앞면지에 흑백사진으로 실렸다. 그러고보니 겉표지는 대나무 색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