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하늘밥도둑

대빈창 2020. 12. 23. 07:26

 

책이름 : 하늘밥도둑

지은이 : 심호택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생명공동체의 파손이 일상화·구조화된 현실에 대한 그 자신의 크나큰 노여움과 슬픔으로 인해 그의 시는 많은 경우 하늘과 땅의 순리에 적응하며 살았던 어떤 ‘가난한 삶’에 대한 절절한 기억에 바쳐지고 있다."

 

이 구절이었다.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망함에 선생이 쓰신 글을 찾다가 시인을 만났다. 아! 시인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심호택(1947 - 2010) 시인은 안타깝게 불의의 교통사고로 향년 63세에 타계했다. 1991년 《창작과비평》에 「빈자의 개」 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다행스럽게 세 권의 시집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첫 시집 『하늘밥도둑』, 두 번째 시집 『최대의 풍경』, 유고시집 『원수리 시편』은 모두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위 글은 첫 시집에 실린 故 김종철 선생의 표사의 한 구절이었다.

표제가 낯설었다. ‘하늘밥도둑’은 ‘땅강아지’의 사투리였다. 시집은 5부에 나뉘어 85 시편이 실렸다. 발문은 시인 고은의 「시인 호택에게 주는 말 몇마디」로 고향 선배가 후배를 자랑하고픈 마음이 담겼다. 잘 알다시피 고은은 한때 승려 생활을 했다. 출가한 절이 고향 군산의 동국사東國寺였다. 시인은 군산 옥구에서 나고 자랐다. 군산의 선배 시인은 후배 시인의 할아버지께 공자와 논어를 배웠다. 시인의 할아버지는 서당 훈장이셨다. 농부가 똥바가지로 쓰는 「미제 철모」(66쪽)를 읊으며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김포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들고개 꼭대기의 초가집에 딸린 변소는 푸세식이었다. 땅에 묻은 원형 노깡에 널빤지 두 개로 발판을 삼은 화장실(?)은 장마철에 일을 보려면 튀어 오르는 똥물을 피해 엉덩이를 들썩여야했다. 아버지가 만드신 똥바가지는 군인철모였다. 노깡에 분뇨가 차면 아버지는 겨울 새벽에 집 앞 텃밭에 거름으로 뿌리셨다.

방아개비, 송사리, 참게······. 시인의 시편은 자연스럽게 어릴 적 그 시절로 기억의 시계를 되돌렸다. 그렇다. 그 시절은 ‘하늘과 땅의 순리에 적응’하며 살았던 이 땅의 마지막 아름다운 시절이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은 시집의 두 번째 시 「아무것도 모를 때」(9쪽)의 전문이다.

 

다랑농가에서 / 콩잎에 붙은 땅개비를 잡아 / 유리병에 담았느니라 // 도랑물가에서 / 송사리떼 들여다보며 / 갈잎배 만들어 띄웠느니라 // 달아난 참게를 기다려 / 저물도록 지켜앉아 있었느니라 / 우리들 아무것도 모를 때 // 그 조그만 것들 모두 어디로 갔나 / 쓸 데도 없이 우리는 /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