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강석경의 경주산책

대빈창 2021. 3. 15. 07:00

 

책이름 : 강석경의 경주산책

지은이 : 강석경

그린이 : 김호연

펴낸곳 : 열림원

 

용장골 / 계림 / 황룡사지 / 괘릉 / 안압지 / 대릉원 / 반월성 / 교동 / 박물관 / 남산 / 인왕동 / 황오동 / 무열왕릉 / 노서동 고분공원 / 진평왕릉 / 오릉 / 서천 / 북천 / 식혜골 / 산림환경연구소

 

책은 23개의 챕터로 구성되었다. 각 꼭지에 나타난 1500년 역사의 고도(古都) 경주의 문화유적과 거리와 장소였다. 마지막 꼭지 「산림환경연구소에서」는 “지난 겨울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남산 쪽으로 이사했다... 6년 만에 미련 없이 거처를 옮겼다.”로 시작되었다. 책은 2004년에 출간되었다. 작가는 90년대 말에 경주에 정착했다. 소설가 강석경(姜石景, 1951 - )은 제1회 『문학사상』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대표작은 장안의 지가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숲 속의 방』이었다. 스스로 많은 소설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 소설을 읽지 못했다.

25년간의 서울살이를 접고, 작가는 아무 연고도 없는 경주로 내려갔다. ‘뿌리로의 귀향’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작가는 경주를 우리 모두의 본향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책은 경주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주 곳곳을 산책하며 떠오른 단상을 적어내려 간 산문집이었다. 서양화가 김호연의 산뜻한 삽화 25점이 실려 책 읽는 맛을 더했다. 삽화를 싣는 정성이 대단했다. 2 - 3쪽 분량의 그림은 접혀 있었다. 책 말미의 경주시내 지도는 작가의 발걸음이 닿은 곳을 가리켰다. 화가는 시내에서 멀지 않은 오릉이 가까운 식혜골에 살았다.

“경주 사람들은 콩잎 반찬을 즐겨 먹나 보다. 삭힌 콩김치로 쌈을 사먹기도 하고 낙엽 같은 콩잎으로 밑반찬을 해 먹기도 했다.”(55 - 56쪽) 나는 대학시절 사람이 콩잎을 먹는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경북 내륙에서 유학 온 자취생이 양념한 콩잎을 깻잎처럼 따뜻한 밥에 얹어 먹었다. 사실 나는 풀잎을 뜯어먹는 토끼를 연상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경기에서 콩잎은 초식동물이나 먹는 풀이었다. 고명처럼 얹힌 시들이 글맛을 새롭게 했다. 매월당 김시습의 「용장골 골 깊으니」, 김춘수의 「흉노」, 헤르만 헤세의 「잔디에 누워」, 삼국유사에 실린 원효를 찬미한 시 「삼매경에 주석 달아 그 책이름 각승이라」, 조선 유학자 김종직의 「회소곡, 회소곡, 서풍이 넓은 뜰에 부니」, 중국 화가 당인唐寅의 「취하고 춤추고 노래하길 오십 년」, 신라 양지스님의 「풍요豊謠」.

작가는 말했다. “내 속에 흐르는 유목의 피가 신라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행운이었어요. 나는 경주 시민이라기보다 신라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라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방황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을 겁니다.” 나의 생에서 경주에 닿은 발걸음은 딱 한 번이었다. 철없던 시절 중학 수학여행이었다. 기억에 편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남은 생을 천년고도 경주에서 소일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