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집 두 권
책이름 : 우울씨의 일일 / 자본주의의 약속
지은이 : 함민복
펴낸곳 : 세계사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그것도 한 시인의 시집 두 권을 연속해서. 두 시집은 세월의 때가 묻었다. 초판 출간년도가 15년 전이다. '우울씨의 일일'은 '90년, '자본주의의 약속'은 '93년도로, 함민복 시인의 첫째와 두번째 시집이다. 내가 묵은 시집을 잡게 된 것은 그만큼 시에 대한 애착이 깊은데서 연유한 것이 아니다. 나는 시를 잘 모른다. 하지만 시인과의 인연은 10여년이 다 되온다. 90년대 말, 마니산이 연두에서 초록으로 옷색이 바뀌어갈 무렵이니, 이맘때의 어느 봄날이었을 것이다. 어찌된 연유인지 우리는 초면부터 시인의 누추한 집에서 낮술로 맥주를 들이켰다. 2차는 시인이 쏜단다. 장소는 '정수사 카페'란다. 도대체 이 외진 곳에 카페라는 도회적 이미지를 풍기는 술집이 있을까. 의아해하면서도 나는 대문을 나서는 시인의 뒤를 쫒았다. 우리가 당도한 곳은 마니산자락의 작은 절 정수사 초입. 거기에 '정수사 카페'가 있었다. 비닐벽에 지붕은 대충 차광막으로 얽어맸다. 초장부터 의기투합한 우리는 막걸리를 냉면 그릇에 가득.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들이 부어 당연하게도 나는 뻗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시인은 문단에서도 알아주는 주신(酒神) 4인방 중의 한 분(?) 이셨다. 그후 나의 책장에 하나둘 시인의 이름이 박힌 책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과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품절된 시인의 초창기 시집 두권을 구할 수 없어, 허한 구석이 있었다. 올 겨울 1월 중순, 오랜만에 시인의 집을 찾았다. 반갑게도 책이 재판되었다며, 속표지에 자필서명하고 두 권의 시집을 건넨다.
시집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는 것은 나의 능력으로 난감할 뿐이다. 나는 독서습관이랄수도 없는 마구잡이 책읽기의 대가(?)이니깐. 시집 한권에는 보통 60여 수 안팎의 시가 실려있고, 뒤에 문학평론가나 동료 문인의 해설이 붙어있다. 지금 읽어보니 압축언어인 본문의 시보다, 오히려 해설이 훨씬 난해하다. 과장하면 해설을 이해하려면, 역설적으로 본문의 시들을 읽어야 할 판이다.
시인이 걸어 온 삶이라는 길을 보자. 62년생 범띠다. 충북 중원 두메산골의 약초캐서 연명하는 땅뙈기 하나없는 지지리 가난한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고교는 나라에서 학비를 대주는 수도전공을 나왔다 천민자본주의에서 공짜가 어디 있는가.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을 노동자로 때워 그 빚을 갚는다. '선천성 서정적 시인'이 원자력발전소에서 시상을 떠올린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몰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징이다. 가진자들의 불야성 환락에 복무하는 가난하고 마음여린 시인의 노동. 여기서 나는 공익광고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린다. 깨끗한 에너지란다. 그렇게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과장스런 제스처를 취하며 너스레를 떨지말고, 단 한움큼만 자기 안마당에 묻어라. 그럼 믿겠다. 클린(?) 에너지 원자력을. 서울예전 문창과 2년 때 '성선설'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한다. 글머리에서 말했듯 시인은 현재 4권의 시집과 2권의 산문집을 냈다. 10여년전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던 시인은 어느날 마니산에 오른다. 그리고 술자리에서 나에게 이렇게 털어놨다. "야! 참성단에서 내려다보는 서해가 무지개 빛을 띠더라, 너무 아름다운 풍경에 내가 머물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동막교회 진입로 오른편 폐가(?)를 월세 10만원에 얻어 둥지를 튼다. 함석과 슬레이트 지붕을 인 3채의 다 찌그러진 거주처를 시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나는청와대, 백악관, 자금성에서 산다'고. 버짐처럼 들뜬 지붕의 페인트 색을. 덧붙여 시인의 삶을 말해주는 에피소드 하나. IMF 시절인 98년도에 시인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다. 그런데 상금은 없고, 멋들어진 패만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닌가? 수상소감 인터뷰를 끝내고, 시인은 혼잣말을 했다. "차라리 먹을 수 없는 패대신 쌀 한포대가 더 나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