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수학자의 아침

대빈창 2022. 6. 17. 07:00

 

책이름 : 수학자의 아침

지은이 : 김소연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나는 詩를 잘 모른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한두 편의 시가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있다. 그것으로 만족했다. 故 박완서 선생은 말했다. “책 읽는 사람이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당시의 마음상태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시집을 펼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온라인 서적의 시 분야를 열고, 인기순으로 정렬했다. 몇 권의 시집을 손에 넣었다.

김. 소. 연. 낯선 이름이었다. 시인은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시단에 나왔다. 『수학자의 아침』은 등단 20년을 맞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으로 2013년 11월에 나왔다. 내가 잡은 시집은 초판 19쇄로 2021년 8월에 출간되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트레이드마크는 표지그림의 시인 컷이었다. 그동안 시인의 얼굴 캐리커처는 소설가 이제하와 시인 김영태가 번갈아 그렸다. 이제하는 말했다. “당시 일반 화가들에게 그려 달라고 하면 화료畵料를 엄청 달라고 하니까 홍익대 미술대를 나오고 문인들과 친했던 김영태와 내가 캐리커처를 그리게 된 것”이라고. 시인의 얼굴 컷이 낯설었다. 얼굴을 그린이가 가수 요조였다. 시집은 5부에 나뉘어 49편의 시가 실렸다.

 

“씩씩한 소연아, 너의 새 시집이 슬픔으로 가득하구나.······. 너의 지금은 네가 가장 깊은 슬픔으로 짠 시간이기에 슬프다. 슬픔만이 진정으로 씩씩한 것을 만든다는 이 아이러니가 슬프다, 소연아.” 

 

시집의 끝자리는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작가의 문학세계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글이었다. 반갑게 故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발문跋文 「씩씩하게 슬프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문단의 대선배 평론가가 후배 시인에게 보내는 애정 가득한 편지글이었다. 마지막은 「그래서」(16-18쪽)의 부분이다.

 

잘 지내요, /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 내가 하는 말을 /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 나 혼자 듣습니다 // (······) // 꿈속에선 /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 바람이 통과하는 빨레들처럼 //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 검게 익은 자두를 베어 물 때 / 손목을 타고 다디단 진물이 흘러내릴 때 / 아 맛있다,라고 내가 말하고 / 나 혼자 들어요

 

시인은 말했다. “시를 처음 시작했던 1990년대에는 탐미적인 시를 썼다. 그랬던 내가 2009년 용산참사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작가선언 6·9‘에 참여했다. 내게 첫 현실참여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이후 오늘의 현실에 대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시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장의 이야기를 담는 시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