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강릉, 프라하, 함흥

대빈창 2023. 2. 13. 07:30

 

책이름 : 강릉, 프라하, 함흥

지은이 : 이홍섭

펴낸곳 : 문학동네

 

카프카는 / 살아서 프라하를 떠나지 않았다 / 뾰족탑의 이끼와 / 겨울 안개가 / 그를 기억한다 // 내곡동 지나 / 보쌀 지나 / 남대천 둑방을 따라 / 바다로 간다 / 안목에 가면 / 바다가 둥지고, 바다가 무덤인 / 갈매기들이 산다 「강릉, 프라하, 함흥」(전문, 16쪽)

 

이렇게 안개가 내리면 / 귀가 커 외롭던 카프카는 좋고 / 모르긴 해도, 당나귀를 닮았을 백석(白石)이 좋다 // 멀리 불빛, 불빛 같은 것도 잠기고 / 살아 있는 것들 모두 겸손하게 사라질 때 / 언덕 위 자취방에 돌아와 / 주인집 노부부가 아끼는 노란 국화를 바라보는 일도 「춘천, 프라하, 함흥」(전문, 37쪽)

 

내가 잡은 시집은 2004년 개정판 1쇄였다. 초판이 98년도에 나온 시집이 아직 살아있다니. 시인은 1990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단에 나왔고,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시인은 서른세살에 첫 시집을 펴냈다. 3부에 나뉘어 65편이 실렸고, 해설은 시인 이문재의 「순정한 시인, 순금의 시」였다. 표사는 장석남의 글이 실렸는데 「순개울 바닷가」의 부제가 ‘석남에게’ 였다.  내가 알기로 시인 장석남은 인천 앞바다의 올망졸망 떠있는 섬들에서 덕적도가 고향이다. 아래는 2연이다.

 

순개울 바닷가에 오면 / 넓디넓은 바다 위로 두런두런 섬들이 모여들고 / 내 삶의 행로가 / 끼룩끼룩 보이기도 한다

 

시인은 서른이 넘어 산에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일간지 기자를 하던 시절이었다. 백담사에 주석하셨던 설악雪嶽 무산無山 스님이 찾으셨다. 머리를 깎지 않은 시인은 그 후 10년을 노스님을 모시고 살았다. 시조시인 노스님의 영향인 지 시인은 문학에 눈을 떴다. 〈설악불교〉 주간을 맡아 일하면서 시를 긁적였다. 대학원 공부를 하기 위해 산을 내려왔다. 첫시집에서 시인은 삶의 비애와 상실, 사랑과 연민을 노래했다.

표제시에서 강릉은 시인의 고향으로, 프라하는 카프카로, 함흥은 백석을 상징했다. 「춘천, 프라하, 함흥」에서 춘천은 시인 이문재의 해설에 의하면 몇 년동안 시인이 지역일간지 문화부기자로 생활했다. 시편들에 시인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새겨졌다. 백담사의 만해와 김시습, 시인의 고향 강릉의 경포호 청파靑坡 여관과 두량짜리 기차(정동진 역), 낙산사 담장과 의상・선묘 설화, 강릉의 내곡동・남대천・안목 하구, 초당草堂, 등명燈明, 언별리言別里, 정선의 태백선과 스위치백, 춘천 향교은행나무, 기형도와 빈집, 백석과 자야(김영한), 당나귀, 백야白夜, 카프카의 프라하와 시인의 강릉.

|시인의 말| 「참매미의 울음」에서 그는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나름대로 여백을 즐기다, 울 때를 가려 우는 참매미로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김소월의 시론詩論을 인용했다. “저 깊고 어두운 산과 숲의 그늘진 곳에서 외로운 버러지 한 마리가 무슨 설움에 겨웠는지 쉼 없이 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