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책이름 :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지은이 : 정채봉
펴낸곳 : 샘터
‘어른을 위한 동화’ 안도현의 『연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잡고, 이 땅의 대표적인 동화작가 故 정채봉(鄭埰琫, 1946-2001)을 떠올렸다. 동화작가는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꽃다발」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작품은 사라져가는 동심을 드러내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따뜻하게 위로하고, 현실에서 소박한 가치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가가 젊은 시절 근무했던 출판사 《샘터》에서 2006년 전집 29권이 완간되었다.
2021년은 동화작가 정채봉이 만 55세로 짧은 생을 마감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였다. 샘터사는 20주기를 맞아 네 권의 산문집에서 엄선한 글들을 모은 산문선집 『첫 마음』과 유일한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의 개정증보판을 출간했다. 시집은 부 구분 없이 74편과 시인 정호승의 발문 「사랑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불빛」을 실었다. 시인은 발문에서 “삶과 죽음의 세계를 넘나들었던 한 동화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의 한 결정체”라고 말했다.
시인은 투병 중인 동화작가의 곁에서 두 달간 병간호를 했다. 퇴원하고 북한산 인수봉 아랫동네로 이사하는 동화작가의 이삿짐을 나르면서 시인은 말했다. “형, 이제 이 집에서 건강도 되찾고, 시도 좀 써서 나랑 공동시집 한 번 냅시다.” 동화작가는 그 말을 잊지 않고 틈날 때마다 메모지나 찢어진 종이에 연필과 볼펜으로 쓴 시 뭉치를 시인에게 건네주었다. 그 시를 묶은 시집이 동화작가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되고 말았다. 나는 시집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읍내에 나간 김에 군립도서관에 들러 『오세암』(창비, 2006. 개정판)을 대여했다. 마지막은 「물가에 앉아서」(62-63쪽)의 전문이다.
나 오늘 물가에 앉아서 / 눈뜨고서도 눈 감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았던 / 지난날을 반추한다 / 나뭇잎 사운대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고 / 꽃잎 지는 아득한 슬픔 또한 있었지 / 속아도 보았고 속여도 보았지 / 이 한낮에 나는 / 마을에서 먼 물가에 앉아서 / 강 건너 먼데 수탉 우는 소리에 / 귀 기울이고 있다 / 나처럼 지난 생의 누구도 물가에 앉아서 / 똑같은 지난날을 돌아보며 / 강 건너 먼데 수탉 우는 소리에 / 귀 기울였을 테지 / 나처럼 또 앞 생의 누구도 이 물가에 앉아서 / 강 건너 수탉 우는 소리에 / 회한의 한숨을 쉬게 될까 / 바람이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