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 2023. 6. 5. 07:00

 

책이름 : 후쿠시마

지은이 : 앤드류 레더바로우

옮긴이 : 안혜림

펴낸곳 : 브레인스토어

 

체르노빌 핵폭발사고 피해자들의 참혹함을 그린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 /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으로 핵과학자·반핵활동가 다카기 진자부로(1938 - 2000)의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시민과학자로 살다』,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일본의 반핵활동가․비타협적 과학자 고이데 히로아키(1949 - )의 『원자력의 거짓말』,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 후쿠시마 원전사고 20킬로미터 이내 동물들의 참혹한 고통을 기록한 일본의 사진작가 오오타 야스스케의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후쿠시마의 고양이』 / 탈핵에너지 교수모임 공동대표 김익중의 『한국탈핵』 / 인문생태 격월간지 『녹색평론』

그동안 내가 읽은 핵(원자력)발전 관련 책들이다. 『후쿠시마』가 《지혜의숲》 신간도서로 들어왔다. 3년 전에 출간된 엔드류 레더바로우의 『체르노빌』이 《내가도서관》에 이었다. 나는 두 권을 연이어 잡았다. 책의 표지그림은 일장기의 태양이 녹아내리는 것으로 보였다. 『후쿠시마』는 170년전 일본 개항에서,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 일본의 에너지 자립에 대한 열망, 그리고 후쿠시마 핵폭발까지 퍼즐조각 하나하나를 맞춰나갔다.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에 굴복한 일본 도쿠가와 막부는 1854년 3월 31일 불평등조약 가나가와 조약(미일화친조약)을 맺었다. 1945년 8월 11일 아침, 미국의 전략폭격기 B-29 슈퍼포트리스Superfortress가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은 13㎢ 안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인구의 60%가 죽거나 심하게 다쳤다. 1954년 3월 1일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 제5 후쿠류마루는 에네훼타크 환초Enewetak Atoll의 미국 수소폭탄 실험에 피복되었고 무전기사 구보야마 아이키치가 방사선 피해로 사망했다.

정치인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말했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제자리를 찾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원자력을 옹호하며 국력을 키워야 한다.” 1955년 11월 미국과 일본은 ‘원자력 민간 이용에 관한 미일협정’에 서명했다. 2000년 일본의 원자력은 최북단 홋가이도의 토마리 원전부터 남쪽섬 규슈의 센다이 원전까지 14개 현의 17개 발전소에서 일본 전체 전력 생산량의 1/3을 만들어냈다. 도쿄전력은 일본 인구의 31%, 그리고 산업시설의 35%에 전기를 공급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소유 전력회사가 되었다. 1999년, 규모 8.5 이상의 지진이 일본의 원자력 발전소를 덮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라는 물음에 구로타니 유지 자원에너지청 원자력안전검사과 선임 검사관은 말했다. “그러면 체르노빌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46분 규모 9.0의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했다. 다행히 4호기, 5호기, 6호기는 이미 정기 유지보수를 위해 가동이 중지된 상태였다. 후쿠시마 제1 발전소는 외부와 연결된 전력선 7개가 끊어졌고 고립되었다.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쓰나미는 해안선 몇 백 ㎞를 따라 거의 모든 것을 파괴했고 내륙 10㎞까지 진출했다. 후쿠시마 제1 발전소는 디젤발전기들이 멈춰면서 1호기에서 5호기까지 공급되던 교류전원이 모두 끊어졌다. 원자로를 냉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사고전까지 가동되던 3기의 원자로 중 어느 원자로에도 펌프로 물을 공급할 수 없었다. 밤 10시쯤 발전기 트럭들이 도착했으나 전혀 쓸모가 없었다.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강타한 후 24시간이 지났을 무렵 1호기가 폭발했다. 3월 14일 오전 11시 1분 아무 경고도 없이 3호기가 폭발했다. 3월 15일 4호기 건물 4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사용후연료 전용 건물을 비롯해 제1발전소 여기저기에 몇 년치의 사용후연료가 쌓여있었다. 원자력안전보안원은 4월 12일 이 사고의 국제원자력 사건 등급을 5등급에서 7등급으로 올렸다. 후쿠시마는 세계 역사상 두 번째로 최고등급의 원자력 사고를 겪은 지역이 되었다. 그해가 끝날때까지 총 99,205명의 시민이 후쿠시마 제1발전소 근처 지역을 떠났고, 추가로 62,831명도 후쿠시마현을 떠나 새로운 곳의 삶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지진, 쓰나미, 원전폭발 사고가 결합한 삼중재난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 훼손된 기반 시설과 건물을 복구하고, 주위 지역의 오염을 제거하는 비용이 2050년까지 81조엔에 다다를 수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일본 핵(원자력)발전소의 모습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일본의 ‘아마쿠다리’는 이 땅의 낙하산 인사였고, ‘가쿠바쓰’는 한국의 학벌사회를 가리켰다. 원전마피아로 구성된 전력회사의 임원과 정부 관료의 회전문 인사, 고위 관료가 퇴직후 기업의 고문으로 각종 규제의 방패막이가 되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고 핵폭발에 대한 안전불감증, 시스템을 맹신하는 무모한 핵발전 문화, 그리고 과학적 일처리가 아닌 경제적 논리가 판을 치는 무모함이 이 땅의 원전문화와 완전 판박이였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세계의 원전전문가들은 예고했다. 다음 핵폭발 사고 국가는 프랑스 아니면 한국이 될 것이라고. 앤드류 레더바로우는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는 명백한 인재人災라고 규정했다. “일본 원자력 산업의 부상과 몰락 역시 돈과 속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안보를 위한 안전을 간과한 수많은 사례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