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대빈창 2023. 9. 14. 07:00

 

책이름 : 바다는 잘 있습니다

지은이 : 이병률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는 표지그림의 시인 컷이다. 낯설다. 그린이가 박훈규다. 시인은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여섯 권의 시집과 다섯 권의 산문집을 상재했다. 나는 그동안 여행산문집 3부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를 잡았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2017)는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각 부에 20편씩 3부에 나뉘어 60시편이 실렸다. 표제는 뒷표지의 시인의 산문 마지막 구절과 「이별의 원심력」(102-103쪽)의 마지막 연에 등장했다.

 

눈보라가 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것입니다

 

 「지구 서랍」(54-55쪽)의 한 손에는 약 봉지를 들고, 몸을 반쯤 접고, 다른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터미널에서 스친 노인은 말(2연)했다.

 

내가 순수하게 했는데, / 나한테 이러믄 안 되지

 

그렇다. 내가 섬에서 노인들이 다투는 와중에 들은 소리였다. 자신은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는데 상대가 이해타산을 앞세워 서운하게 나올 때 하는 말투였다. 발문은 시인 김소연의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였다. '문장을 정말로 능란하게 다루려면 그 문장의 깊이만큼 깊이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142쪽) 발문의 제목과 소제목의 절반은 시집의 시 구절에서 인용했다.

시인은 말했다. “뻔할지 모르지만 첫 시집부터 줄곧 지금까지 제 시를 꿰어온 주제는 사람이에요.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제게 파고들 땐 거기서 저와 비슷한 표정이 있기 때문이죠. 제 시에서 전개되는 사람에게 위로도 얻고 사랑의 감정도 느끼고 상처도 받는 과정, 그건 우리가 참된 인간으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