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일기 5
책이름 : 해방일기 5
지은이 : 김기협
펴낸곳 : 너머북스
상편이 완료되는 『해방일기 5』는 분단 건국의 일차적 책임이 미국에게 있는지를 미군정의 공산당 탄압, 좌우대립의 분수령인 ‘대구 사태’,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풀어냈다. 소련군은 진주하면서 일본인의 행정권과 경찰권을 인민위원회에게 넘겨주고 후원자의 위치에 섰다. 미군은 조선을 통치하던 총독부의 권력을 넘겨받아 스스로 통치자의 위치를 구축했다. 1946년 11월 이북은 선거를 통해 최고인민회의라는 의회를 만들었다. 이남의 입법의원 선거는 90명 의원 중 절반을 주둔군 사령관이 임명(관선의원)했고, 나머지 절반(민선의원)을 선출한 선거는 선거라고 할 수도 없는 개판이었다.
5권의 부제는 ‘길 잃은 해방이 가져온 비극’으로, 시간대는 1946. 9. 2 ~ 12. 30. 이었다. 차례는 4장으로 구성되었고, 각 장의 말미에 실은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는 저자와 안재홍 선생과의 가상대담이었다. 마지막 두 편의 글 「해방 대신 전쟁을 맞은 베트남」, 「조선인도 베트남인의 항쟁을 성원했다」는 같은 약소민족으로서 상황을 파악하는 하나의 지표로 베트남을 바라보았다.
1장 미군정의 공산당 탄압(1946. 9. 2 ~ 30). 미군정 통치하에서 힘을 독점한 것은 반공세력으로 부일협력자 집단. 해방공간에서 이 집단의 엄청난 자금력은 일본 항복에서 미군 진주 사이의 20여일동안 찍어낸 30여 억의 뭉칫돈. 당시 조선은행권 통화량의 3분의 1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현금으로 쥐고 있으면서 한민당은 군중동원과 테러조직의 엄청난 힘을 발휘. 박헌영 일파는 중앙위원회 등 공식기구를 거치지 않고, 장악하고 있는 간부직을 통해 당을 자의적으로 운영. 해방 후 조선은 만성적 ‘풍년 기근’으로 식민지 말기 전쟁기에도 1인1일 2.5홉이 배급표준, 1946년 전반기 대부분이 겨우 1홉이었으나 제대로 배급되지 못함. 전평이 주도한 ‘9ㆍ23 총파업’은 7월이후 공산당이 채택한 신전술의 일환. 전평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조직, 대한노총은 노동운동에 대항해 사용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조직. 공산당의 신전술은 미군정의 공산당 고립정책에 대항해 박헌영 중심의 공산당 주류 세력이 좌익의 헤게모니를 강화하는데 목적. 좌익의 전략적 역량이 박헌영 일파의 전술적 이득을 위해 희생, 그 사이 폭력집단을 앞세운 극우파에 돌아간 우익의 헤게모니. 우익테러단체를 끌고 용산 기관구 파업농성 본부를 습격한 김두한(金斗漢, 1918-72)의 ‘파업 분쇄’가 아닌 전평간부 8명을 때려죽인 학살.
2장 좌우대립 격화의 분수령, 대구 사태(1946. 10. 3 ~ 31). 9. 30 이후 공산당 본부, 전평, 민전을 습격하면서 경찰과 우익테러 단체의 연합관계가 공식화. 극심한 민생고를 배경으로 터져 나온 10ㆍ1 대구사태. 박헌영 일파를 중심으로 남로당이 결성되고 신전술의 연장선에서 반체제 활동이 본격화. 한민당과 이승만 세력이 미군정과 밀착되었고 조병옥, 장택상 등 극우파가 경찰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간접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진다는 것은 불가능.
3장 조미공동소요대책위원회의 역할과 의의(1946. 11. 2 ~ 28). 일본에서 돌아온 조선인 귀환자가 체포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일본으로 밀항하는 것은 미군정 치하 조선 상활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 김규식은 대구소요 사태 조사를 위해 만든 조미공위 활동을 통해 미군정과 절충하여 조선인의 의지를 점진적으로 관철하려는 현실주의적 입장. 입법의원 선거는 인민→리里 대표→면面 대표→군郡 대표→ 도 대의원을 뽑은 4중 간접선거, 군대표들의 투표율이 3할로 한민당, 독촉 후보자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무소속 후보들이 휩쓴 선거(?). 이승만은 책략과 선동에 능한 사람으로 천문학적인 방미 모급액을 거두었고 배 타러 인천 간다며 성대한 환송식을 열고는, 그날로 서울로 돌아와 사흘 후 약속되어 있던 군정청 군용기에 올랐다.
4장 남조선과도입법의원 개원(1946. 12. 2 ~ 30). 서울시 빈민용 ‘비스킷 사건’과 서울 시민의 식량용 ‘고구마 사건’의 이권에 연루된 초대 서울시장 김형민. 해방 후 유입된 인구를 전재 동포 또는 전재민이라 했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온 귀환자가 각각 100만 전후에 이북의 토지개혁 이래 월남자가 수십만으로, 200만을 훨씬 웃도는 이남 유입인구. 미군정은 좌익의 위협을 이유로 국가경찰을 정당화.
역사학자는 「앞서가는 이북과 혼란에 빠진 이남」에서 말했다. “권력의 주구를 너무 키워놓으면 주구 스스로 권력이 되려 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검찰에서 확인할 수 있다.”(12쪽) 『해방일기 5』의 초판은 2013. 5.에 나왔다. 그동안 12년 6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이 땅은 이제 주구가 권력을 차지했고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 중국 소설가ㆍ혁명가 루쉰(魯迅, 1881-1936)은 말했다.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고. 사람을 무는 개를 제때 두들겨 패지 못한 조국의 불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