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 소년
책이름 : 눈물꽃 소년
지은이 : 박노해
펴낸곳 : 느린걸음
노동운동가·혁명가 박노해朴勞解(본명 朴其平, 1957- )의 『눈물꽃 소년』은 시인의 첫 자전수필이었다. 고흥의 작은 마을 동강에서 자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어릴 적 ‘평이’라고 불렸던 소년시절의 성장기였다. 33편의 글마다 수록된 삽화는 시인이 직접 그린 연필그림이었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어려운 심부름을 시켰고, 그 일을 마치자 하신 말씀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안다하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귀인”. 마당 멍석에 널어놓은 곡식을 쪼는 새들을 긴 대나무 장대로 애써 쫓은, 노을녘에 돌아온 어머니 말씀 “열심이 지나치면 욕심이 되지, 아깝고 좋은 것일수록 남겨두어야 하는 것”. 오일장 나선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세워 서릿발처럼 지나치는 사람들, 개한(참되지 아니한) 사람, 주변머리 없는 자, 얼간이, 멋없는 이.
아버지와 함께 한 벌교역에서 광주까지 난생처음 타보는 기차여행, 아이를 업은 초라한 행색 아낙의 광주리 배를 모두 사서 같은 칸의 사람들에게 배를 깎아 돌리는 아버지. 장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입안에 넣어주신 볼이 불룩한 알사탕, 알사탕을 노래하는 손자에게 하신 할머니 말씀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지고”. 오랜만에 고흥집에 오신 아버지가 죽순구이를 만들어 저녁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면서 하신 말씀 “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인”.
내 나이 일곱 살에 마흔두살에 돌아가신 아버지, 자식들한테 눈물을 보인 적이 없는 서른일곱에 홀로 되신 어머니. 동강초등학교 개천절 행사에서 흰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백발수염의 어르신이 나직이 혼잣말하신 영기靈氣, 은사銀謝.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던 작으나 단단한 신앙공동체 동강 공소公所, 벌교 본당에서 파견나온 눈물많으신 멕시코인 호세 신부님. 이른 아침 첫 일과는 너른 흙마당을 쓰는 일, 반항심이 자라던 나에게 하신 어머니 말씀, “깨끗하고 가지런한 아침마당에 들어서면 누군들 삼가는 마음을 갖지 않겠느냐”.
어린 도강생의 질문을, 저녁먹고 언덕위 동백나무에서 따로 만나 답변을 주신 서당 훈장선생님. 동네 일이 생기면 도움을 청하는 ‘동네 한바퀴’는 아버지없이 자라는 어린 나를 북돋아 준 말없는 배려의 보살핌. 모내기를 앞두고 써레질하는 날, 어머니는 일꾼들 먹일 갯장어를 손질하다 큰 부상을 당해 혼자 면소재 의원에 가시면서 맡긴 어쩔 수 없는 첫 요리. 초등학교 입학하고 해낸 최초의 성취는 구구단 암기. 눈 오는 밤 방물장수한테 빌린 무협지 세 권을 밤을 꼬박 새워 읽으면서 만난 다른 세상.
홀로 다섯 남매를 키우느라 수척해진 어머니의 모습이 서러워 싸한 슬픔으로 내내 가슴에 남은, 아홉 살 때 어머니께 모진 매를 맞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한마디 “그래 늙으면 두고 보자!”. 새로 오신 담임 꽃선생님의 숙제, 서른 개가 넘는 한지봉투에 든 꽃씨들의 잠결에 들려온 속삭임. 짝궁 정숙이는 전쟁으로 몸이 상해 아비·어미가 일찍 죽어, 무당 소경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소녀. 어머니의 특명으로 짐보따리를 등에 지고 외삼촌을 찾아가는, 용식이 형이 노동산을 가로지르는 가파른 길을 종이포대에 그려준 지도.
억울한 아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다 매를 맞아 퉁퉁 부은 얼굴로 혼자 학교를 나왔다가 위로를 온 동무들과의 한바탕 해원굿. 여름방학 갯골에서 고기를 잡다 큰 은빛물고기에 욕심이 동해, 물이 밀면서 죽을 고비였을 때 들려 온 목소리 “힘 빼, 얼른 놓아버려”.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형이 건네 준 강소천 시집. 여순사건에 연루되어 돌아가신 아버지, 입하나 덜려고 외삼촌 댁에 얹혀살면서 낯선 곳에 와서 놀림 받으면서 말문을 닫은 아랫동네 연이 누나.
열한살 봄 학교가 끝나면 텅 빈 집보다 학교 작은도서관으로 향하던 발길, 상처 난 아이의 미친 듯한 독서를 등불 켜고 말없이 기다려준 선생님. 어려운 이들과 아픈 사정있는 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손을 모아 절하며 비나리하시는 할머니. 아버지가 신으시던 흰고무신 한 켤레를 깨끗이 닦아 댓돌에 올려놓고 품앗이를 나가시는 어머니. 외톨이였던 나에게 “나랑 같이 놀래” 말을 붙였던 도시에서 전학 온 첫사랑 민지.
늘 학생들 말을 몸을 기울여 들어주신 ‘수그리 선생’. 색시가 매운 연기를 맡을 까봐 산의 싸리나무를 다 잘라와 헛간에 쟁인 민기 아재. 자전거 타는 맛에 몰래 헐은 어머니가 계란 판돈을 모아 둔 플라스틱 저금통. 옛 어릴적 훈장 선생님 말씀 “제 이름 더럽히지 말고, 자기 이름대로 살면 그게 유명한 사람”. 자신을 위한 기도는 없고 어렵고 애통한 이들, 자식에 대한 기도뿐이었던 어머니. 냄새나는 옷과 맨날 꼴지만 하던 짝궁 광선이와의 동강국민학교 졸업식날 국밥집의 외상국밥.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언제부턴가 너무 빨리 잃어버린 원형의 것들이, 인간성의 순수가, 이토록 순정하고 기품 있는 흙가슴의 사람들이 바로 얼마 전까지 있었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슴 시린 나의 풍경"(242쪽)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