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
책이름 : 주강현의 우리문화기행
지은이 : 주강현
펴낸곳 : 해냄
민속학자 주강현(朱剛玄, 1955- )을 처음 만난 책은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한겨레신문사, 1996․1997) 두 권이었다. 책은 원론적 교과서로 처음 만난 책에 조응되는 인문기행서였다. 내가 잡은 책은 초판으로 1997. 7. 10. 출간되었다. 민속학자는 말했다. “인문학의 바다에서 황금시대를 발견한 것이다. 황금가지, 황금연못, 황금조기, 황금 쏘가리, 황금뿔…… 우리에게도 오염되지 않은 황금시대가 있었다.”(13쪽) 그 시절 틈만 나면 서너 권의 책을 배낭에 쟁여 넣고 이 땅의 산하를 떠돌아다녔다. 나의 역마살을 등태기질한 유력한 용의자 중 한권이었다.
∥봄∥ 1장 바다에서 건진 황금가지. 아열대산 상록수가 울창한 외연도 섬 중앙의 당산(당숲). 1960년대까지 한 해 세 차례 당제, 어장이 열리는 음력 4월, 어장을 닫는 음력 11월, 8월 햇곡식의 노구제. 지금의 제의祭儀는 정월 열나흗날 정일에 한번. 소를 신성하게 여겨 ‘지태’라고 하는 소바침. 고대 중국 제齊나라 전횡全橫 장군이 이곳으로 망명, 인근 어청도와 녹도의 제당 등 서해안 일대에서 모신 장군 신.
2장 수레바퀴 밑에서. 금환낙지金環落地의 명당 오미동五美洞 운조루雲鳥樓. 유이주(柳爾冑, 1726-1797)가 구레 운조루에 든 것은 1776년. 운조루의 옛 주인이 타고 다니던, 현장에 그대로 남아있는 마루 밑의 수레바퀴. 지리산 화계계곡 맨 끝 쌍계사 말사 칠불암七佛庵.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화상이 만들었다는 신비의 선방 아자방亞字房.
3장 밥은 하늘이며, 좇은 희망이어라. 경남 남해도 가천마을 암미륵(여근석)·수미륵(남근석). 가천마을에서 지내는 음력 10월 초순 밥무덤 제사. 고려말 왜적토벌에 공을 세운, 민중들의 소박단순한 탑동의 정지鄭地5층탑. 유배지 절해고도 노도櫓島에서 어머니를 위해 『구운몽』을 창작한 서포 김만중. 미항美港 미소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최영장군 사당 무민사武愍祠. 천연기념물 물건면 어부림, 남해 지족해협의 죽방렴.
4장 정진인,죽도에 오다. 금강 상류가 굽이치는 섬 모양의, 정여립鄭汝立이 마지막 숨을 거둔 진안 죽도竹島. 선비 1,000여명 희생, 호남을 반역향으로 낙인찍은 기축옥사己丑獄事. 진표율사가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삼은 모악산. 금산사 미륵전 미륵장륙삼존입상彌勒丈六三尊立像. 4000만년동안 4차례에 걸친 지각운동으로 1500미터 두께로 퇴적된 역암덩어리 마이산.
5장 복사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가 살찌네. 남한강 상류 단양 금굴은 전기 구석기에서 청동기시대까지 다양한 문화층이 층위를 이룬 복합유적지. 2만여점의 유물이 그 자리에 있는 수양개 유적. 깨끗하고 맑고 센 물살을 좋아하는 천연기념물 황쏘가리. 삼도를 굽어보는 소백산줄기 용부원마을 죽령산신당. 평민 온달이 공주와 결혼한 것은 용맹스런 장수를 요구한 당시의 절박한 세태를 반영, 영춘 온달산성.
6장 황금연못에서 조기가 울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오목하게 들어간 포구에 대나무·싸리나무나 돌로 보를 막아서 고기를 잡던 어로방식 어살漁箭. 오키나와에서 제주도, 남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북쪽까지 하나의 띠를 형성하면서 독살(돌로 만든 어살) 문화가 발달. 음력 정월 열나흗날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당제를 올리는 신진도는 섬 중심에 산신을 모신 상당, 중앙에 서낭당의 서낭신, 마을 우물의 샘에 우물신.
∥여름∥ 7장 늪에는 귀신이 살지 않는다. 우포·폭포·사지포와 몇 개의 작은 소택지로 이루어진 51만평의 창녕 우포늪. 직경 50-60센티미터의 큰 방석만한 잎의 멸종위기종 희귀식물 가시연꽃. 5만3000평의 화왕산성 억새를 태우는 창녕 진산 화왕산火旺山의 풍년기원 산신제. 관룡사觀龍寺 입구의 돌장승 한 쌍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護法神將. 국가지정문화재 25호·26호로 지정된 창녕 영산 쇠머리대기·줄다리기.
8장 철마가 새끼치고 돌계집이 노래하며. 앞바다 깊숙이 미륵이 있다는 통영 미륵섬 미남彌南 마을. 삼덕 포구 장군당의 장군신을 그린 신상과 목마 2기, 장군당의 수호신은 전형적인 철마신앙. 경주 천마총天馬塚의 ‘백화수피제白樺樹皮製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천마도는 말타는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의 배 양쪽에 늘어뜨리는 마구馬具 말타래에 그려진 그림.
9장 왕비님의 금빛 베개. 부여 성주사지聖住寺址의 고운 최치원이 지은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달마의 10대손 낭혜화상 성주무염聖住無染.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 성주산파. 1300년전 백제 유민의 넋을 위로하는 은산 별신제. 백제 무녕왕릉의 화려한 두침(목침). 곰나루 웅진熊津의 웅신당熊神堂.
10장 백악기 공원, 56억 7,000만 년의 약속.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수많은 공룡의 발자국이 찍힌 경남 고성 상족암. 고려말 우왕13년(1387) 8월, 장방형 화강암 자연석 바위 앞면에 204자를 새긴 사천매향비. 가하천과 사천만이 합수하는 마을 고성 가산駕山은 무형문화재 탈춤 오광대의 본고장.
11장 황금뿔과 사슴 사냥꾼. 울주 태화강 지류 대곡천 돌병풍의 반구대 바위그림. 경주 박물관 금관의 사슴뿔, 고래잡이로 번성했던 태화강 하류의 장생포. 문수산 망해사지望海寺址와 〈처용설화〉. 왜국에 볼모로 잡힌 왕자를 구하고 대신 죽음을 당한 남편(박제상)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아내의 전설이 서린 치술령자락 은을암隱乙庵.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득도한 곳 웅촌熊村 운흥사지雲興寺址.
12장 르네상스 시대의 철옹성 보고서. 1796년 발간된 전10권 640장의 보고서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성둘레 약 3,600보 성벽 높이 약 2장丈5척尺. 성 주변에 호壕를 판 화성華城은 불과 2년만에 신도시 거설과 축성이라는 대역사 완성.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 하는 치성雉城. 성문 앞에 둥글게 쌓아 적이 문을 공격할 수 없게 만든 옹성甕城. 화성 축성은 다산의 거중기 외에 유형거 10량, 대차 8량, 별평차 18량, 평차 76량 등 다양한 운반기구가 동원. 정조의 농업개혁 구상을 뒷받침하는 만석거萬石渠.축만제祝萬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