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책이름 : 외롭고 높고 쓸쓸한
지은이 : 안도현
펴낸곳 : 문학동네
어머니는 6형제의 장녀였다. 외할아버지가 두 번 장가를 가셨다. 어머니의 한 배 형제는 1남2녀였다. 어린 나의 기억에 외할머니는 표독스러웠다. 명절 말미 김포 들녘을 내려다보는 언덕빼기 가난한 초가집에 발걸음을 하신 당신은 어린 손주들을 매섭게 나무라셨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먼 하늘에 눈길만 주셨다. 계모 슬하의 어머니 형제들은 눈칫밥을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삼남매는 유달리 형제애가 돈독했다. 설날과 추석. 다음날 해가 오후로 기울면 외삼촌과 이모 부부는 서울에서 김포 시골집 누나·언니 집에 내려 오셨다. 이모부와 외삼촌은 연탄공장 노동자였다. 외삼촌은 기계 사고로 오른손가락이 엄지와 약지뿐이었다. 이모부는 내가 대학 다닐 때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고, 외삼촌은 재작년에 타계하셨다. 외삼촌의 죽음은 분명 과했던 술의 영향이 컸다. 4홉들이 소주 서너 병을 비워야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울행 완행버스 막차도 떨어진 늦은 시각. 외삼촌은 술이 취해 비척거리면서 강화를 떠나 서울 신촌이 종점인 직행버스를 강제로 세웠다. 한적한 시골 동네를 지나치던 직행버스 막차는 불한당에 발목 잡혀 어쩔 수없이 취객을 승차시켜야만했다. 늦은 밤 서울 올라가는 외삼촌의 전매특허였다.
나의 중학시절 서울에서 처음 묵은 집은 수색 달동네의 이모집아니면 이문동의 외삼촌 단칸방이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외숙모가 굵은 소금을 뿌려 구워낸 연탄불 석쇠의 고등어자반. 생각만으로 혀끝이 달달하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도 있구나. 시골 밥상에 오른 생선은 고작 살보다 뼈가 많은 밴댕이구이였다. 동아일보 편집국장 고명딸로 명문여고 출신인 외숙모가 섬 출신 가난뱅이 연탄공장 노동자 외삼촌을 만난 사연. 나는 그 내막을 모른다. 외숙모는 이복동생 삼촌들을 동아일보 기사로 취직시켜 든든한 밥벌이를 챙겨주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 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집을 여는 첫 시 「너에게 묻는다」(11쪽)는 3행이 전문이다. 이 시집은 5부에 나뉘어 57 시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이성욱의 「연단(鍊鍛)에서 오는 새 길의 풍경」이다. 「연탄 한 장」, 「반쯤 깨진 연탄」, 「겨울밤에 시쓰기」 4편에 연탄이 등장했다. 국민시라고 할 수 있는 「너에게 묻는다」가 실린 시집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나는 먼저 시인의 음식시편인 『간절하게 참 철없이』와 시 창작 노트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를 잡았다.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의 한 구절을 따온 표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시집에 두 번 등장한다. 自序의 마지막 문장 “모든 것들이 좀더 가난해지기를, 좀더 외로워지기를, 좀더 높아지기를, 좀더 쓸쓸해지기를.” 그리고 부제가 ‘이광웅 선생님’인 「군산 동무」의 한 연은 ‘백석의 시처럼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