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책이름 : 담론
지은이 : 신영복
펴낸곳 : 돌베개
지난 달 15일 선생이 돌아가셨습니다. 스무날이 지나서 나는 천천히 책갈피를 넘겼습니다. 작년 초봄. 책을 예약발매로 손에 넣었습니다. 부제가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이었습니다. 내가 최초로 만난 선생의 책은 햇빛출판사에서 나온 초판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출소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한 부모의 염려로 『평화신문』에 연재되었던 옥중서신의 일부가 선생의 출소와 함께 책으로 엮였습니다. 책날개의 사진은 봉황 눈매가 인상적인 선생의 중년 모습입니다. 표지는 감방 동료의 체온으로 인한 「여름 징역살이」의 고통에 관한 글을 적은 봉함엽서입니다. 「검열필」푸른 잉크자국이 선명합니다.
책은 2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 동양고전으로 읽는 세계인식 11꼭지와 2부 인간에 대한 성찰 14꼭지로 이루어졌습니다. 1부에 나오는 동양고전은 『시경』, 『초사楚史』,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입니다. 2부는 『청구회의 추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변방을 찾아서』, 『엽서』,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에서 인용된 글을 매개로 ‘인간학’에 대한 강의를 펼쳤습니다. 선생의 모든 책을 초판본으로 섭렵한 저에게 2부에 실린 글들이 가슴깊게 와 닿았습니다. 2004년 『강의』이후 10년 만에 동양고전으로 접하는 선생의 강의 『담론』은 ‘나의 대학시절’이라 술회하는 선생의 숱한 징역살이의 일화가 감동을 더 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는 찬사를 듣는 선생의 삶은 기구했습니다. 선생의 징역살이 세월은 무려 20년 20일이었습니다. 선생이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수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길어야 2시간 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생명 그 자체였다고 선생은 술회합니다. 대학 강사이던 선생이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나이가 27살이었습니다. 무기수로 감형되어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해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였습니다. 이듬해부터 대학 강단에 다시 선 선생은 지난해 25년의 대학 강의를 마감했습니다.
이 시대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선생은 “지식인은 비판 담론, 저항 담론, 대안 담론 생산에 충실해야 하고, 그 담론들을 실천할 사회적 역량들을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석과불식(碩果不食)’입니다. 여기서 석과(碩果)는 가을에 나뭇가지 끝에 하나 남겨 둔 씨 과일을 가리킵니다. 씨 과일과 시대의 표상 신영복 선생. 1969년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는 27살의 청년. 짧은 머리와 헐렁한 군복을 걸친 선생의 모습에 눈길이 오랜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눈시울이 서서히 뜨거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