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 2016. 4. 1. 07:00

 

 

책이름 : 나는 너다

지은이 : 황지우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 『게 눈 속의 연꽃』,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에 이어 다섯 번째로 황지우의 시집을 잡았다. 아니다. 여섯 번 째다. 학고재에서 나온 조각시집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가 있었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은 87년 6월 국민대항쟁이 한창일 때 나왔다. 《풀빛판화시선 - 26》으로 피곤에 찌든 노동자의 옆얼굴을 새긴 오윤의 목판화가 눈길을 끌었었다. 그때 표지 바탕의 미색은 새 시집 겉표지 테두리로 흔적을 남겼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R' 시리즈의 여섯 번째 시집으로 복간되었다.

 

聖母와 聖子와 목수, / 하루 연탄 두 장과 쌀 여섯 홉을 배급받는 이 聖家族, / 이 核家族을 보호하고 있는 / 서울의 순 진짜 참 복음교회. / 아들아 다시 사막으로 가자. / 샛강 너머로 가자. / 모래네, 沙川을 넘어 구로동으로 가자. / 최소한, 잉여인간은 되지 말자.

 

「92.」라는 제목의 여덟 번째 시의 전문이다. 수록된 시 96편은 분량이 달랑 두 줄에서 열쪽까지 다양하지만 제목은 모두 숫자였다. 아둔한 나는 시인의 의도를 도통 모르겠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제목을 대신하는 數字는 서로 변별되면서 이어지는 내 마음의 불규칙적인, 자연스러운 흐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4쪽) 해설은 문학평론가 정과리의 「추상적 민중에서 일상적 타자로 넘어가는 고단함 -『나는 너다』를 되풀이해 읽어야 할 까닭」으로 60여 쪽에 가까운 장문이었다. 원고지 200매를 훌쩍 넘겼다.

시인 황지우는 유신독재와 5월 광주로 시작되는 암울한 1980년대를 정면돌파했다. 시인은 폭압의 시대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했다. 시 「44.」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1980년 5월 30일 오후 2시, 나는 청량리 지하철 플랫폼에서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을 보았다’ 시인은 80년 5월 광주를 서울 시민에게 알리려고 청량리역에서 유인물을 배포했다. 체포된 시인은 실제 생지옥을 체험했다. 시 「107.」의 2행부터 4행이다. ‘高空으로 올라간 나의 長兄은 / 지금 輪回를 빠져나가고 있다 / 아우는 무단가출하고 없다’ 시인의 형은 선승 宇晟스님이고, 아우는 노동운동가 황광우다.

 

첫 시 「503.」의 첫 행 :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마지막 시 「1.」의 첫 행 : 꼬박 밤을 지낸 자만이 새벽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