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햇바람 ~ ~ ~ 나다.

대빈창 2021. 8. 11. 07:00

입추立秋가 하루 지나고, 말복末伏이 이틀 남은 휴일이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마른 장마가 물러간 지도 어언 한 달 여가 되었다. 서해의 작은 섬들은 지독한 가뭄에 시달렸다. 하늘만 바라보던 간척지의 벼 포기들은 짠기가 올라와 벼 끝이 시뻘겋게 타들어갔다. 밭작물은 한 뼘도 자라지 못하고 이식한 채 그대로였다. 시원한 온돌방에 등짝을 붙이고 누웠다가 깜빡 낮잠이 들었다.

잠결에 어렴풋이 빗소리를 들은 것일까.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밀려드는 대기의 습기를 맡은 것일까. 얼결에 눈을 떴다. 빗방울 듣는 소리가 후두둑! 귓구멍 가득하게 들어찼다. 의자 등받이에 걸쳐있던 옷을 걸치고 현관문을 밀쳤다. 텃밭으로 내려서는 계단에 올라섰다. 어머니가 그물망에 든 양파 꾸러미를 간추리고 계셨다. 마른 텃밭의 황토에 굵은 빗방울이 시원하게 내리 꽂혔다. 하늘은 금방 먹장구름이 가득했다. 기대가 너무 컸는지 모르겠다. 10여 분 만에 먹장구름이 물러나고 햇살이 쏟아졌다. 강우량은 고작 1mm 였다. 동녘하늘에 무지개가 섰다. 무지개는 한 다리를 석모도 보문사의 마애석불좌상 눈썹바위에 세웠다.

저녁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대빈창 해변 제방에 올라섰다. 한 방울 두 방울 다시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되돌려 마을로 향했다. 비가 사람을 약 올리는 것인지 마당에 들어서자 빗방울이 그쳤다. 서해의 작은 섬들은 비가 귀했다. 일기예보의 강우량이 10mm라면 섬주민들은 이렇게 알아들었다. 빗방울 10개가 떨어질 것이라고. 하늘은 내내 어두웠다. TV의 일기예보는 여지없이 오늘밤도 열대야를 알리고 있었다.

낮 동안 35도를 웃도는 폭염에 시달리고, 이어지는 열대야에 사람들을 지쳐갔다. 다행히 우리집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봉구산 기슭에 앉았다. 산에서 일어난 바람이 바다로 쓸어내리는 바람꼬지였다. 어머니는 나무 그늘에서 부채 하나로 찜통더위를 물리쳤다. 나는 우리집을 섬에서 가장 시원한 집터로 여겼다. 방바닥에 누워 열린 창으로 올려다보는 하늘은 둥실 떠가는 흰구름 밖에 없었다. 돗자리를 깔고 홑이불 하나, 삼베 베개로 나는 살인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잠결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선선하게 느껴졌다. 비몽사몽 창문 한 짝을 닫았다. 어느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남은 한 짝 창문마저 닫았다. 돗자리의 서늘한 기운에 새벽녘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이불장의 포대기를 꺼내 방바닥에 깔고, 홑이불을 끌어당기며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햇바람 났다.”

 

어제 밤에 계절은 크게 한 번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가을이 슬그머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곧 귀뚜라미 울음이 들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