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물결따라 흘러 온 덕적도

대빈창 2024. 8. 14. 07:00

〚 옹진군, 자ㆍ연ㆍ품ㆍ은 옹진자연 〛

 

띠지의 글씨다. 스티로폼 박스 뚜껑이 세찬 바닷바람에 날려 제방 축대를 날아올라 해송 숲 솔가리에 얹혔다. 매직으로 쓴 글자는,

 

― 덕적 으름실 박찬기 ―

 

스티로폼 박스의 주인은 덕적도 박찬기 어부일 것이다. 나는 ‘으름실’을 자연부락 이름으로 유추했다. 으름덩굴이 우거진 골짜기가 바다로 이어진 어촌마을이었을까. 아니면 어선 이름이 ‘으름실’일지도 모르겠다. 조업 중이던 배에서 스티로폼 박스가 바다로 떨어졌다. 그날 유달리 파도가 높았을 것이다. 물결에 떠밀리다가 박스와 뚜껑은 분리되었다. 뚜껑은 물결 따라 흐르다 주문도 대빈창 해변에 닿았고, 저녁 산책나선 나의 눈길에 띄었다.

스티로폼 박스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꽃게, 밴댕이, 병어··· 아니면 복다림으로 이름 높은 민어일지도 모르겠다. 김포 언덕배기 초가집에 살 때, 나는 ‘덕적도’하면 굴장수가 떠올랐다. 다리 짧은 지게를 진 늙수그레한 사내가 마을에 나타나 “덕적도 강굴이 왔어요.”를 외치면 어느새 찬바람 부는 계절이 돌아왔다. 지게에 얹힌 가마니 안은 투명비닐로 감쌌다. 어머니는 쌀 두어 됫박을 퍼주고, 강굴 한 대접을 받았다. 강굴은 바닷물에 담그지 않은 물기가신 굴을 가리켰다. 저녁 밥상에서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굴 한 점 한점을 양념간장에 찍어 드셨다. 귀한 굴은 가끔 자식들에게도 차례졌다. 우리는 김이 오르는 밥에 간장과 함께 굴을 썩썩 비며 숟가락으로 입이 찢어져라 우겨 넣었다. 강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었다.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일미一味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지 15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바다가 조금만 오염되어도 자연산 굴은 바위에 붙지 않았다. 강화에서 유일하게 자연산 굴이 생산되는 바다가 내가 살아가는 서도西島의 섬들이었다. 살을 찢는 한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할머니들이 주문도 해안 ‘구라탕’에서 한점 한점 좨로 쫀 굴이었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돌아오면 나는 굴국을 끓이거나 생굴을 양념간장에 찍어 회로 먹었다. 마지막은 덕적도 출신 시인 장석남(張錫南, 1965 - )의 「배를 매며」의 전문이다. 시인은 약관의 나이로,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 등 뒤로 털썩 / 밧줄이 날아와 나는 /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 사랑은, /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 배가 들어와 /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 배를 매게 되는 것 // 잔잔한 바닷물 위에 /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 떠 있는 배 //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 온종일을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