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심야전기보일러

대빈창 2025. 4. 28. 07:00

사나흘전 심야전기보일러를 교체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날이 2008. 11. 2. 그때 보일러실은 슬라브 옥상에 있었다. 시공일은 08. 6. 29.이었다. 시공업체는 인천의 금강설비였다. 전주인은 심야전기보일러를 설치하고 제대로 사용도 하지 못한 채 이사를 떠났다. 2010년 여름 서해를 관통한 태풍 곤파스에 보일러실 조립식 판넬은 힘없이 무너졌다. 축열조와 온수기가 알몸을 드러냈다.

그때 읍내의 대흥설비와 인연을 맺었다. 옥상의 보일러를 뒷울안에 조립식 판넬로 새 집을 마련하고 옮겼다. 기중기를 불러들이고, 전기기사의 손까지 빌린 큰 공사였다. 그후 온도센서·순환모터 교체 같은 작은 고장은 내가 손보았다. 내 손을 벗어난 보일러 수리는 설비에 전화를 넣었다. 1인 업체 사장 겸 기사는 벌써 15년째 겨울이 돌아오기 전에 섬에 들어와 우리집 보일러를 손보았다.

심야전기보일러 내구연한은 15년이었다. 우리집 보일러는 17년이 되었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돌아오면 나는 빼먹지 않고 부식방지제를 투입했다. 남들보다 2년 더 보일러를 사용했던 연유였다.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나는 기존 보일러와 똑같은 기종을 선택했다. 17년동안 잔고장을 주물렀던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2017년 섬의 집집마다 정부보조로 가스보일러를 설치했다.

새로 심야전기보일러를 설치하면서 시험가동만 했던 가스보일러를 뜯어냈다.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노모가 추위를 많이 타셨다. 단독주택 우리집은 1982년 지어졌다. 43년전이었다. 겨울철 북풍이 불어오면 방안은 위풍이 아주 심했다. 가스보일러로 감당할 수 없었다. 보일러 축열조·온수기의 물을 빼고 전이장에게 지게차 도움을 요청했다. 술값이라도 하시라고 약소하나마 봉투를 마련했다.

보일러실 진입로가 좁아 지게차 운전에 애를 먹었다. 임시방편으로 보일러 조립식 판넬을 일부 뜯어내고 보일러를 앉히는 작업이었다. 걱정이 들었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때 구원처럼 동네 형님 세분이 나타나셨다. 그들은 지게차가 운신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 농업용 상하차 사다리를 깔았고, 인력으로 축열조를 제자리에 앉혔다. 무릎 반월연골판 봉합술 환자인 나는 보조기를 차고 목발을 짚은 채 애만 태웠다.

난관을 간신히 해결하자 하루가 기울었다. 기사 사장은 저녁배로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날 첫배로 다시 섬에 들어왔다. 작은형이 데모도로 크게 고생했다. 평생을 노동으로 살아오신 작은형의 일솜씨는 탁월했다. 둘째 날은 뜯어낸 판넬을 다시 제자리에 이어붙이는 작업이었다. 나는 축열조 표면에 유성펜으로 시공일자를 적었다. 2025. 4. 23.  부식방지제를 해마다 투입하여 난방수가 깨끗했다. 배관청소를 할 필요가 없었다.

몸을 가누기가 여의치 않은 어머니 침대 이불아래 전기매트를 깔았다. 허공의 침대에 방바닥의 온기를 전달하려면 가스보일러는 어림도 없었다. 겨울철 어머니 방은 발바닥이 뜨거워 제대로 발을 디딜 수 없었다. 심야전기보일러의 위력이었다. 어머니의 얼마남지 않은 생을 최대한 보살펴드리고 싶었다. 큰돈이 들어가는 심야보일러 교체공사였다. 이틀 동안 점심을 큰말 해돋이 식당에서 매식했다. 식당으로 향하기 전 나는 어머니 점심으로 가무락 국물과 재래김을 식탁에 차렸다. 당신은 혼자 밥을 드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