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개복숭아로 효(孝)를 담그다

대빈창 2012. 6. 28. 06:00

 

 

 

 

 

하나. 민가와 멀리 떨어진 산중 야생 복숭아를 채취한다.

둘째. 잎과 꼭지를 깨끗이 손질하여 물로 씻는다.

셋째. 물기가 완전 빠질 때까지 하루 저녁 광주리에 담아 둔다.

넷째. 항아리에 갈색 설탕과 개복숭아를 1:1 비율로 쟁이고, 맨 위는 공기가 차단되도록 설탕을 두툼하게 덮어 준다.

다섯째. 항아리 아가리는 비닐로 밀봉하고 고무줄로 맨다.

여섯째. 가끔 위아래를 뒤집어 부패를 방지하며 100일간 발효 시킨다.

일곱째. 액을 항아리에 넣고 한지로 밀봉하여 6개월간 숙성시킨다.

 

개복숭아 효소를 담그는 법입니다. 믿을만한 (사)전국귀농운동본부의 자료입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를 위해 저는 개복숭아 효소를 담그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앞서 블로그에 올렸듯이 주문도 봉구산은 개복숭아가 지천입니다. 위 이미지는 제가 점 찍어둔 야생복숭아 나무입니다. 엄지손톱만한 열매가 적색을 띠고 있습니다. 흔히 개복숭아의 열매는 연두색을 띱니다. 돌연변이나 특이종 같아 약효가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콩을 찾을 때 검은콩을 애호하는 마음과 한가지 입니다. 항아리는 어머니가 섬으로 이사 오실 때 챙기셨습니다. 저는 짐만 는다고 어머니를 타박했는데, 이렇게 긴요하게 쓰입니다. 한 달 전 강화도에 나가는 길에 저는 흑색설탕을 한 포대 구입했습니다. 이제 개복숭아만 따오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엊그제 누이가 섬에 들어왔습니다. 어머니가 섬에 들어오시고 나서 발길이 더욱 잦습니다. 동생은 큰 수술을 받은 이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소록소록 솟구친다고 언제인가 말했습니다. 누이는 바지런합니다. 오자마자 산에 올라 야생복숭아를 잔뜩 따 왔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저는 산에 올라 제가 점찍어둔 복숭아나무를 유심히 들여다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진’이라고 하는 수지(樹脂)가 흘렀습니다. 저는 복숭아 하나를 입에 넣었습니다. 씨가 박혔습니다. 효소를 담그기에 시기를 놓친 것입니다. 집에 내려오니 수돗가에서 어머니와 밑에 집 할머니 그리고 누이가 개복숭아를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챗구멍의 많은 거품이 눈에 뜨였습니다. 세제로 야생복숭아 열매의 겉에 난 잔털을 씻는 것입니다. 누이왈 “잔털이 가시지 않아서 그랬어. 깨끗이 헹구면 되지 뭐“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화학물질 덩어리인 세재로 효소를 담글 복숭아를 씻다니. 하지만 저는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 누이는 지금 어머니 앞에서 효소(酵素)를 담그는 것이 아니라, 효(孝)를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색 복숭아의 정성어린 효소 담그기는 내년으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저는 수세미로 분명 개복숭아를 힘들여 닦겠다고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