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와 백록담은 휴화산이다
벌써 열흘이 되었습니다. 한반도 전체가 폭염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초입으로 기억됩니다. 서해 낙도에 흔치않은 공연단이 찾아 왔습니다. 11시가 넘어서자 중천에 솟은 태양은 표창 같은 햇살을 뿌려대기 시작했습니다. 대지는 뜨겁게 달아올라 숨 막히는 열기를 뿜었습니다. 마을 앰프방송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칠순을 넘기신 어르신들이 하나둘 언덕 위 교회를 향해 힘든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공연이 시작 되면서 얼추 예배당에 반정도나마 좌석이 들어찼습니다. 찜통더위에 이만한 피서지가 없습니다. 실내는 성능 좋은 에어컨이 씽씽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반갑습네다” 짙은 화장의 예술단 단장이라는 중년 여성의 북녘 사투리로 공연의 막이 올랐습니다. 섬을 찾은 공연단은 ‘평양 백두·한라 예술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을 주최한 단체는 민주평통강화군협의회‘입니다. 예술단은 여성 단장까지 포함해 모두 9명으로 구성되었는데, 해금 독주하는 청년이 청일점입니다. 단원들은 2000년 초에 신앙과 자유를 찾아 월남한 사람들로 북한에서 10년 이상 예술 활동을 한 순수 탈북예술인들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단원들이 단장의 손짓에 따라 좌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나같이 TV에서 보았음직한 S라인 몸매를 가졌습니다. 늘씬한 체형을 부각시키는 미니스커트와 얇고 투명한 T 셔츠 차림입니다.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탈북 여성들이 ’샘물터에서‘와 장고춤을 선보이고, 해금과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뽕짝을 합창으로 불렀습니다. 반주자의 사소한 실수에 사회를 맡은 단장의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야 한다‘는 우스개 멘트에 섬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합니다. 교회 측에서 수박과 떡을 준비해 관람객들에게 돌립니다.
그들은 아사자가 속출하는 생지옥인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동남아를 떠도는 고난의 역경을 이겨내고 남한에 터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자유보다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한 목숨 건 탈출로 저는 봅니다. 제가 비뚤어진 것일까요. 공연에서 악기 연주는 손 흉내로만 여겨지고, 노래도 립싱크로 보입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이 쌀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일 것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상품화시켜야만 생존할 수 있는 이 땅에서 그들의 어설픈 미소 속에 감추어진 삶의 고단함을 엿 보았습니다. 서글픔이 밀려 왔습니다. 1시간여 공연이 끝났습니다. 교회 문을 밀치자, 더욱 강렬해진 햇살이 노인네들의 정수리에 쏟아 부었습니다. ‘백두와 한라’. 저는 한반도 지형을 해방춤 추는 투사로 그려낸 이철수의 목판화와 김정환의 시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른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를 떠 올렸습니다.
죽은 자/무엇으로 남았는가
남의 유채꽃 북의 진달래/흐드러져/이 땅에 흘린 피로 맺혀있네
온누리 온몸 흔드는 함성/눈부신 노동과 투쟁의 열매로
아아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이 얼마나 참혹한 고통인가/남과 북의 원한 강물져 흐를 때/우리는 해방의 나라로 가야하네
온누리 물불로 아름다운 세상/치욕인 산 울음인 산 떨쳐 일어나
아아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로
우리 해방의 나라 기억하리라/산천초목 영원한 기쁨의 나라/온누리 부활로 피어오르니
투쟁이 사랑으로 만나는 세상/투쟁이 영원으로 만나는 세상
아! 통일의 땅에 우리 가리라/아! 통일의 땅에 우리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