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서울 이야기
지은이 : 김남일
펴낸곳 : 학고재
한국 근대문학의 연륜은 100년을 훌쩍 넘어섰다. 소설가 김남일은 근대 문학의 흔적을 따라 걸으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4부작을 길어 올렸다. 교과서 속 수많은 작가들의 황홀한 꿈과 절박한 한숨이 빚어낸 우리 문학사였다. 문학평론가 4인은 쉽지 않은 여정을 밟은 선배에게 헌사獻詞를 바쳤다. 문학평론가 권성우는 『서울 이야기』 추천사에서 말했다. “풍부한 문학사적 지식, 근대와 고투한 문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 남다른 인문적 식견, 인간과 시대를 바라보는 곡진한 마음을 깔고 있으며 신선한 자극과 배움을 얻는 즐거운 독서”가 펼쳐졌다.
처음 찾은 소년시절과 10년후 다시 찾은 퇴락한, 유진오의 「창랑정기」(1938). 1887년 경복궁 후원 건청궁과 향원정 일대에 전구 750개가 처음 불을 밝혔고, 1889년 서대문(돈의문)과 동대문을 오가는 단일노선 전차 개통. 1900년 한강에 철교가 놓였고, 1905년 경부선 완공. 서울의 한국 최초 근대식 학교는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1885). 미신타파를 정면으로 내세운 계몽소설, 이해조의 신소설 『구마검』(1908). 근대의 거센 바람에 사대부가의 몰락을 그린, 유진오의 미발표 장편 『민요民謠』(1939), 김사량의 미완성 장편 『낙조』(1940), 이광수의 『흙』(1932).
1908년 11월 국내 최초 종합 월간 교양잡지 『소년』 창간호에 실린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최초 한국 근대시. 일제의 침략에 놓인 조선 현실을 그린 염상섭의 「김의관 숙질」(1957). 연극 전용이던 단성사는 1918년 조선인 관객을 위한 전용 상영관으로 개축, 1919년 10월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 상영. 1909년과 1910년 조선 통감 테라우치와 이완용의 병합 조약을 성사시키려 서울과 도쿄를 분주히 오간 이인직. 1915년 인구 약 24만명으로 붐비지 않았던 서울, 이광수의 『무정』(1917), 염상섭의 「전화」(1925), 나도향의 장편 『환희』(1923).
서울의 1919년 3·1운동, 심훈의 「찬미가에 쌓인 원혼」(1920), 전영택의 「독약을 마시는 여인」(1921). 3·1운동 후 변해버린 서울을 그린 이광수의 『재생』(1925). 서울은 온갖 도깨비들이 분수 모르고 날뛰는 염상섭의 「암야」(1919). 봉건적 폐습 ‘조혼’을 신랄하게 비판한 심훈의 장편 『직녀성』(1934), 『불사조』(1931), 염상섭의 「만세전」(1922). 관음의 대상으로 전락한 신여성 심훈의 장편 『영원한 미소』(1933-1934). 조선 문단 최초 여성작가 김명순에게 퍼부어진 인격살인과 조롱. 보수적인 사회의 눈치를 보는 젊은 여자 유학생, 나혜석의 「경희」(1918).
일제는 식민정책의 성과를 내세우려 수시로 대규모 공진회, 품평회, 박람회 개최. 계용묵의 단편 「인두지주」(1928)는 도시의 박람회가 배경. 도시 빈민의 끔찍스런 현실을 그린, 현덕의 「군맹」(1940), 전영택의 「화수분」(1925), 이효석의 「도시와 유령」(1928), 최서해의 「무명초」(1929), 송영의 「인왕산」(1936), 김유정의 「심청」(1936), 현진건의 「빈처」(1921), 「운수 좋은 날」(1924). 노동자 연대의 힘으로 새로운 내일을 열어야 할,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1929). 1935년 서울의 일본인 인구는 28퍼센트로 폭증. 본정本町 중심거리 산책, 염상섭의 수필 「소시지의 거리」(1929).
1933년 성북동으로 이주한 이태준은 열 칸 기와집을 짓고 정원에 유실수를 심은,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1941). 세검정 홍지동에 땅을 구입하고 열두칸 기와집을 지은 이광수의 수필 「봉아의 추억」(1934). 1936년 4월 1일 시행령으로 경성부는 3.5배 면적 확장, 인구 65만명으로 증가.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 독자들의 투서로 15회만에 연재를 끝낸 이상의 「오감도」. 미쓰코시 백화점이 무대, 이상의 소설 「날개」. 20세기 초반 중류이하 서울말의 보고 박태원의 『천변 풍경』.
일제강점기 최고의 문장가 이태준은 표준어주의자 『문장강화』(1940). 채만식은 수필 「대륙 경륜의 장도, 그 세계사적 의의」(1940)를 발표한 후 본격적인 훼절의 길. 1935년 카프는 김남천이 임화, 김기진과 협의해 해산을 결의. 전향한 사회주의자의 내면을 드러낸 김남천의 「처를 때리고」(1937). 변절한 사회주의자의 행각을 보여준 「경영」(1940), 「맥」(1941). 대화숙大和塾은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외부와 완벽히 격리된 공간으로 자체적인 수용 보호시설. 이광수의 수필 「행자」(1941), 「육장기」(1939). 1941년 12월 7일 일제는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는 ‘대동아전쟁’ 시작, 윤동주의 「별 헤는 밤」(1941). 일본 소설가 다나카 히데마쓰가 1948년 발표한 장편 『취한 배』는 조선 문단을 추잡한 야바위꾼들의 집합처로 묘사. 시인 김광섭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3개월동안 모진 고문을 받고 송치, 만주독립군 이야기를 기록.
1940년 8월 일제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 이태준의 「토끼 이야기」(1941). 1943년 베이징으로 끌려간 이육사는 이듬해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참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절명.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 운명, 3월 10일 사촌 송몽규가 눈을 뜬 채 운명. 1943년 12월 9일자 〈매일신보〉에 서정주는 조선인 최초 가미카제 마쓰이 히데오의 죽음을 기리는 「마쓰이 오장 송가」 발표. 1939년 유진오는 ‘북지황군위문단’을 격려하는 「신질서 건설과 문학」을 발표하여 본격적인 전향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