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34

겨울 텃밭의 배추

절기는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冬至로 향하고 있습니다. 김장채소로 무와 알타리를 파종했습니다. 배추 포트묘와 쪽파 종구를 이식했습니다. 입동 다음날부터 사흘 동안 김장을 담갔습니다. 벌써 한 달 열흘이 흘러갔습니다. 뜬금없이 겨울 텃밭의 배추 포기가 푸른빛이 청청합니다. 그만큼 올 겨울은 온화했습니다. 영하의 날씨는커녕 진눈깨비 몇 송이 날린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부직포를 씌운 세 두둑은 월동작물입니다. 붙은 두 두둑은 마늘이고, 외떨어진 두둑은 양파입니다. 배추 표트묘는 72공 짜리 1.5판을 이식했습니다. 검정비닐로 멀칭한 밭에 90여 포기를 심고, 노지에 30여 포기를 심었습니다. 어머니가 김장 때 말하셨습니다. “땅에 심긴 배추는 그냥 놔둬..

텃밭을 부치다 2023.12.18

계묘년癸卯年, 김장을 담그다.

계묘년癸卯年 입동 다음날, 작은형이 첫배로 섬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김장 담그기 75년 노하우가 빛을 발할 것이다. 뒷집 고양이 어린 흰순이도 한 몫 하겠다고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니 지시대로 텃밭의 쪽파를 큰 플라스틱 대야와 작은 함지박에 가득 차게 뽑았다. 그때 작은 형 차가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열린 봉당에서 쪽파를 다듬었다. 작은형은 꼼꼼한 성미대로 알타리무를 손질했다. 나는 배추 밑동을 도려냈고, 무를 간단없이 머리와 꼬리를 잘라 마당으로 날랐다. 올해 김장채소 무, 배추, 알타리, 쪽파 모두 밑동이 굵고, 포기가 차서 탐스러웠다. 텃밭농사는 보기 드물게 풍년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무를 수세미로 닦아 광주리에 담아 물기를 말렸다. 점심을 먹고 오수에 빠졌다. 빗소리에 눈을 떴다...

텃밭을 부치다 2023.11.13

계묘년癸卯年, 입동立冬으로 가는 텃밭

위 이미지는 십일월 첫날 오후 두 시의 텃밭이다. 작은 형이 오랜만에 섬에 들어오셨다. 이른 점심을 먹고 형제는 텃밭으로 나섰다. 한 두둑에 가축퇴비 두 포를 넣고 세 두둑을 삽으로 일렀다. 토양살충제를 뿌리고 고무래로 평탄작업을 했다. 다음날 나는 뭍에 나갔다. 3주 만에 군립도서관에 발걸음을 했고, 보건지소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들렀다. 오던 길에 농약사에서 양파 두 판을 샀다. 170공 짜리 한 판이 만원이었다. 섬에 돌아와 어머니께 양파묘 값이 많이 올랐다고 말씀드렸더니, 차라리 사먹는 것이 낫겠다고 우스개를 하셨다. 동절기로 배시간이 바뀌면서 오후 배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빈 시간이 많았다. 석모도 어류정항 앞마다가 마주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내일 새벽부터 비소식이 있었다..

텃밭을 부치다 2023.11.06

계묘년癸卯年, 한가위의 텃밭

주문도 느리 부락에서 어머니의 유일한 말동무인 아랫집 할머니에 따르면 우리 텃밭은 집터였습니다. 할머니는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 셋입니다. 열여섯 살에 시집오셨다고 하니 믿을만한 소식통입니다.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언덕의 텃밭은 지대가 높아 세찬 빗줄기에 해마다 표토가 쓸려 내려갔습니다. 온돌로 쓰였던 네모난 시멘트가 밭을 일굴 때마다 드러났습니다. 작은형과 나는 힘을 합쳐 밭가에 쌓았습니다. 이미지에서 고라니 방지용 그물에 매인 줄을 묶었습니다. 오른쪽 두 두둑은 무밭입니다. 올해 구입한 씨앗의 무청이 옅은 색이고, 묵은 씨앗을 뿌린 두둑의 무청 색깔이 짙습니다. 제 눈에는 확연히 드러나 보입니다. 땅콩을 수확한 빈 두 두둑이 보입니다. 멀칭 했던 투명 비닐이 반쯤 흙속에 묻혔습니다. 여느 해보다 유..

텃밭을 부치다 2023.10.04

계묘년癸卯年, 김장을 부치다.

지난 주말, 참으로 오랜만에 작은 형이 섬에 들어오셨다. 도금공장 공장장 시절, 어머니가 계신 섬을 자주 찾아 갯벌의 조개잡이, 가을철 망둥어 낚시를 즐겼다. 형은 천성이 부지런한 분이다. 노동유연화 정책은 형의 노동력을 악착같이 빠는 문어 흡반이었다. 공장은 파산되었고, 형은 실업자 신세로 몇 달을 버티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산업쓰레기(스티로폼)를 수거하는 일이다. 쉬는 날은 토요일뿐이었다.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느라 부족한 잠을 때우려 낮잠으로 소일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셨다. 실내에서 워커에 의지해 간신히 걸음을 옮기셨다. 정형회과에서 MRI를 찍었으나 뼈와 근육에 이상이 없었다. 진료과목을 신경과로 변경했다. 뇌 MRI를 찍자 굵은 혈관에 이상이 나타났고, 신경외..

텃밭을 부치다 2023.08.22

계묘년癸卯年, 입추立秋로 가는 텃밭

한 달 넘게 지속되던 지루한 장마가 끝났다. 33℃가 웃도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열대야로 기분 좋은 숙면은 물 건너갔다. 매스컴은 아우성을 질러댔다. 역사 이래 가장 무더운 7월이었다고. 절기는 열세 번째 입추立秋를 향하고 있었다. 김장용 무·배추를 심는 시기다.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처럼 김매기도 끝나가고 시골은 모처럼 한가해 질 때다. 위 이미지의 텃밭은 한 눈에 봐도 흐트러졌다. 작년 초겨울로 들어서면서 어머니가 부쩍 보행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대학병원 응급실로 두 번 직행했다. MRI 촬영을 했으나 뼈와 근육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섬으로 돌아왔다. 궁여지책으로 신경과 진찰을 예약했다. 텃밭으로 내려서는 계단이 어머니에게 벼랑..

텃밭을 부치다 2023.08.01

계묘년癸卯年, 청명淸明의 텃밭

위 이미지는 계묘년癸卯年 청명淸明이 닷새가 지나고, 우리집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텃밭입니다. 청명은 24절기에서 다섯 번째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있는 절기입니다. 농가에서 봄 일이 시작되는 절기로 논과 밭의 두둑을 가래질로 손보았습니다. 본격적인 논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로 농부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지독한 봄 가뭄으로 땅에 묻은 씨앗이 움쩍도 하지 못한 나날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청명을 전후하여 주문도에 60mm 단비가 쏟아졌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마른 논에 물이 괴었습니다. 또는 물이 실렸습니다. 보름 전 이른 아침을 먹고 텃밭에 나섰습니다. 가축 퇴비가 몇 포 남지 않아 요소를 뿌리고 삽으로 일렀습니다. 토양살충제를 시용하고 네기로 두둑을 평탄하게 고릅니다. 홉바로 씨앗을 넣을 줄을 ..

텃밭을 부치다 2023.04.10

임인년壬寅年 김장을 담그다.

임인년壬寅年 김장을 마친 텃밭이다. 어머니가 퇴원하시고 올 마지막 농사는 김장 담그기와 마늘・양파 파종만 남았다. 다행스럽게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운신할 수 있는 기력을 회복하셨다. 이제부터 살림살이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작은 형은 공장 사정으로 시간을 낼 수 없어 주말의 김장 날짜를 확정짓지 못해 불안해했다. 나는 우리끼리 김장을 하자고 용기를 내었다. 지난 주말은 온 섬의 집집마다 김장을 담그느라 자식들이 고향을 찾았다. 나는 김장 준비로 삼일을 잡았다. 왕초보의 막무가내 김장담그기 도전이었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이것저것 천둥벌거숭이 막내아들을 이끌었다. 우선 쪽파 반 두둑을 뽑고, 짠지를 담갔다. 올해 배추가 보잘 것 없는 반면 무 농사는 섬에 정착한 이래 가장 대풍이었다. 어머니가 ..

텃밭을 부치다 2022.11.15

임인년壬寅年 추석秋夕의 텃밭

위 이미지는 임인년壬寅年 추석秋夕의 텃밭이다. 절기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는 백로白露를 지나, 추분점秋分點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秋分으로 향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올해 한반도는 완연한 아열대 기후를 나타냈다. 현재까지 주문도의 총 강수량은 1,000mm를 넘어섰다. 1.1(신정)- 6.21.(하지)까지 강수량은 고작 106mm 이었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아열대 기후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정수리를 벗기는 강렬한 햇살이 쏟아지다, 느닷없이 퍼붓는 폭우는 열대성 소나기 스콜을 연상시켰다. 작물 파종기의 극심한 가뭄으로 발아가 늦되거나, 겨우 싹을 틔운 작물도 갈증에 허덕이다 시들었다. 기특하게 고개를 내밀며 목숨을 부지하던 작물을 폭..

텃밭을 부치다 2022.09.13

임인년壬寅年 춘분春分의 텃밭

위 이미지는 임인년壬寅年 춘분春分의 우리집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텃밭입니다. 춘분은 24절기에서 네 번째로 경칩驚蟄과 청명淸明 사이에 있는 절기입니다. 태양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습니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입니다. 봄기운이 듬뿍 들어 있는 들나물을 캐어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습니다. 농사에서 초벌 경운을 하고, 본격적인 영농준비에 바쁜 철입니다. 봄바람이 세차고 한번은 꽃샘추위가 닥치기 마련입니다. 사흘 전, 먼동이 터오면서 이른 아침을 먹고 텃밭으로 나섰습니다. 진돗개 트기 느리가 집으로 쓰는 창고 마지막 칸 앞 두 두둑을 퇴비 세 포대를 뿌리고 삽으로 일렀습니다. 토양살충제를 뿌리고 쇠스랑으로 뭉친 흙을 곱게 다졌습니다. 땅콩파종용 투명..

텃밭을 부치다 2022.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