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부치다 37

갑진년甲辰年, 김장을 담그다.

4(月)일 작은형이 저녁배로 섬에 들어왔다. 내가 몸에 탈이 나 예정보다 하루빨리 입도入島했다. 차에 빈 김치통이 가득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주문도에 삶터를 꾸린 이래 김장담그기는 우리 형제의 중요 연례행사가 되었다. 5(火)일 나는 아침배로 섬을 나서 읍내의원을 찾았다. 다행스럽게 기우였다. 의사는 4일치 처방을 내렸다. 11월부터 동절기 배편으로 바뀌었다. 오후배를 타고 들어와 집에 도착하니 4시반이 되었다. 작은형이 홀로 많은 일을 해치웠다. 알타리무를 수확하고 쪽파를 다듬어놓았다.거의 한두둑을 파종한 게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알맞은 총각무를 반정도 수확할 수 있었다. 형제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6(水)일 작은형은 알타리무를 다듬고 세척하고 버무려 총각무를 김치통에 담았다..

텃밭을 부치다 2024.11.11

갑진년甲辰年 한로寒露의 텃밭

한로寒露는 추분秋分과 상강霜降 사이에 있는 24절기 중 17번째 절기다. 찰 한寒, 이슬 로露가 말해주듯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이슬이 서리로 변해가는 시기였다. 찬 이슬이 맺히면서 기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섬주민들의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봉구산의 넓은잎나무는 단풍이 물들어가고, 겨울 철새 기러기가 다랑구지 대빈창 들녘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왔다. 위 이미지는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한로의 텃밭’이다.카테고리 〈텃밭을 부치다〉를 뒤적였다. 3년전 신축년辛丑年 한로에 올린 글이 있었다. 어머니가 고갯길의 텃밭 진입로 경사로에서 호박넝쿨을 뒤적이고 계셨다. 늙은호박을 갈무리하시려는 모양이다. 3년전, 그 시절이 그리웠다. 어머니는 텃밭작물을 돌보면서 큰 낙을 얻으셨다. 텃밭 두둑마다 각종 채소가 가득 들어찼다. ..

텃밭을 부치다 2024.10.10

갑진년甲辰年, 소서小暑로 가는 텃밭

절기는 북반구에서 낮 시간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를 지나,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로 향하고 있었다. 이름그대로 하지감자를 수확할 시기였다. 지구열대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한반도의 기존 장마 공식이 깨졌다. 그동안 장마전선은 북상하면서 제주도부터 시작되어 남부, 중부에 많은 비를 쏟아 부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마른장마가 이어지다가 국지적으로 무지막지한 폭우를 퍼부었다. 이를 ‘도깨비 장마’라고 불렀다. 이제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했다. 언제든지 때를 가리지 않고 비를 퍼붓기 때문이다.하지가 하루 지난 주말 아침, 오랜만에 빗줄기가 오락가락했다. 하도 반가운 빗님이시길래 슬라브 옥상에 올랐다. 단비에 젖어가는 텃밭을 이미지로 잡았다. 못자리를 앉힌 후 비 한 방울..

텃밭을 부치다 2024.07.01

겨울 텃밭의 배추

절기는 이 시기에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冬至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김장채소로 무와 알타리를 파종했습니다. 배추 포트묘와 쪽파 종구를 이식했습니다. 입동 다음날부터 사흘 동안 김장을 담갔습니다. 벌써 한 달 열흘이 흘러갔습니다. 뜬금없이 겨울 텃밭의 배추 포기가 푸른빛이 청청합니다.그만큼 올 겨울은 온화했습니다. 영하의 날씨는커녕 진눈깨비 몇 송이 날린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부직포를 씌운 세 두둑은 월동작물입니다. 붙은 두 두둑은 마늘이고, 외떨어진 두둑은 양파입니다. 배추 표트묘는 72공 짜리 1.5판을 이식했습니다. 검정비닐로 멀칭한 밭에 90여 포기를 심고, 노지에 30여 포기를 심었습니다. 어머니가 김장 때 말하셨습니다. “땅에 심긴 배추는 그냥 놔둬..

텃밭을 부치다 2023.12.18

계묘년癸卯年, 김장을 담그다.

계묘년癸卯年 입동 다음날, 작은형이 첫배로 섬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김장 담그기 75년 노하우가 빛을 발할 것이다. 뒷집 고양이 어린 흰순이도 한 몫 하겠다고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니 지시대로 텃밭의 쪽파를 큰 플라스틱 대야와 작은 함지박에 가득 차게 뽑았다. 그때 작은 형 차가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열린 봉당에서 쪽파를 다듬었다. 작은형은 꼼꼼한 성미대로 알타리무를 손질했다. 나는 배추 밑동을 도려냈고, 무를 간단없이 머리와 꼬리를 잘라 마당으로 날랐다. 올해 김장채소 무, 배추, 알타리, 쪽파 모두 밑동이 굵고, 포기가 차서 탐스러웠다. 텃밭농사는 보기 드물게 풍년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무를 수세미로 닦아 광주리에 담아 물기를 말렸다. 점심을 먹고 오수에 빠졌다. 빗소리에 눈을 떴다...

텃밭을 부치다 2023.11.13

계묘년癸卯年, 입동立冬으로 가는 텃밭

위 이미지는 십일월 첫날 오후 두 시의 텃밭이다. 작은 형이 오랜만에 섬에 들어오셨다. 이른 점심을 먹고 형제는 텃밭으로 나섰다. 한 두둑에 가축퇴비 두 포를 넣고 세 두둑을 삽으로 일렀다. 토양살충제를 뿌리고 고무래로 평탄작업을 했다. 다음날 나는 뭍에 나갔다. 3주 만에 군립도서관에 발걸음을 했고, 보건지소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들렀다. 오던 길에 농약사에서 양파 두 판을 샀다. 170공 짜리 한 판이 만원이었다. 섬에 돌아와 어머니께 양파묘 값이 많이 올랐다고 말씀드렸더니, 차라리 사먹는 것이 낫겠다고 우스개를 하셨다. 동절기로 배시간이 바뀌면서 오후 배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빈 시간이 많았다. 석모도 어류정항 앞마다가 마주 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내일 새벽부터 비소식이 있었다..

텃밭을 부치다 2023.11.06

계묘년癸卯年, 한가위의 텃밭

주문도 느리 부락에서 어머니의 유일한 말동무인 아랫집 할머니에 따르면 우리 텃밭은 집터였습니다. 할머니는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 셋입니다. 열여섯 살에 시집오셨다고 하니 믿을만한 소식통입니다.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언덕의 텃밭은 지대가 높아 세찬 빗줄기에 해마다 표토가 쓸려 내려갔습니다. 온돌로 쓰였던 네모난 시멘트가 밭을 일굴 때마다 드러났습니다. 작은형과 나는 힘을 합쳐 밭가에 쌓았습니다. 이미지에서 고라니 방지용 그물에 매인 줄을 묶었습니다. 오른쪽 두 두둑은 무밭입니다. 올해 구입한 씨앗의 무청이 옅은 색이고, 묵은 씨앗을 뿌린 두둑의 무청 색깔이 짙습니다. 제 눈에는 확연히 드러나 보입니다. 땅콩을 수확한 빈 두 두둑이 보입니다. 멀칭 했던 투명 비닐이 반쯤 흙속에 묻혔습니다. 여느 해보다 유..

텃밭을 부치다 2023.10.04

계묘년癸卯年, 김장을 부치다.

지난 주말, 참으로 오랜만에 작은 형이 섬에 들어오셨다. 도금공장 공장장 시절, 어머니가 계신 섬을 자주 찾아 갯벌의 조개잡이, 가을철 망둥어 낚시를 즐겼다. 형은 천성이 부지런한 분이다. 노동유연화 정책은 형의 노동력을 악착같이 빠는 문어 흡반이었다. 공장은 파산되었고, 형은 실업자 신세로 몇 달을 버티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산업쓰레기(스티로폼)를 수거하는 일이다. 쉬는 날은 토요일뿐이었다.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느라 부족한 잠을 때우려 낮잠으로 소일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셨다. 실내에서 워커에 의지해 간신히 걸음을 옮기셨다. 정형회과에서 MRI를 찍었으나 뼈와 근육에 이상이 없었다. 진료과목을 신경과로 변경했다. 뇌 MRI를 찍자 굵은 혈관에 이상이 나타났고, 신경외..

텃밭을 부치다 2023.08.22

계묘년癸卯年, 입추立秋로 가는 텃밭

한 달 넘게 지속되던 지루한 장마가 끝났다. 33℃가 웃도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열대야로 기분 좋은 숙면은 물 건너갔다. 매스컴은 아우성을 질러댔다. 역사 이래 가장 무더운 7월이었다고. 절기는 열세 번째 입추立秋를 향하고 있었다. 김장용 무·배추를 심는 시기다.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처럼 김매기도 끝나가고 시골은 모처럼 한가해 질 때다. 위 이미지의 텃밭은 한 눈에 봐도 흐트러졌다. 작년 초겨울로 들어서면서 어머니가 부쩍 보행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대학병원 응급실로 두 번 직행했다. MRI 촬영을 했으나 뼈와 근육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섬으로 돌아왔다. 궁여지책으로 신경과 진찰을 예약했다. 텃밭으로 내려서는 계단이 어머니에게 벼랑..

텃밭을 부치다 2023.08.01

계묘년癸卯年, 청명淸明의 텃밭

위 이미지는 계묘년癸卯年 청명淸明이 닷새가 지나고, 우리집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텃밭입니다. 청명은 24절기에서 다섯 번째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있는 절기입니다. 농가에서 봄 일이 시작되는 절기로 논과 밭의 두둑을 가래질로 손보았습니다. 본격적인 논농사를 준비하는 시기로 농부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지독한 봄 가뭄으로 땅에 묻은 씨앗이 움쩍도 하지 못한 나날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청명을 전후하여 주문도에 60mm 단비가 쏟아졌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마른 논에 물이 괴었습니다. 또는 물이 실렸습니다. 보름 전 이른 아침을 먹고 텃밭에 나섰습니다. 가축 퇴비가 몇 포 남지 않아 요소를 뿌리고 삽으로 일렀습니다. 토양살충제를 시용하고 네기로 두둑을 평탄하게 고릅니다. 홉바로 씨앗을 넣을 줄을 ..

텃밭을 부치다 2023.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