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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의 부상負傷

10월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사흘 전 아침 7:40 이었다. 대빈창 해변 바위벼랑 반환점을 돌아 아침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해변 제방길에서 마을로 꺾어드는 진입로 전망대를 스무 걸음쯤 남겨 두었을까. 기러기 한 마리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겁이 없는 녀석이구나!기러기들은 영리했고 사람을 두려워했다. 빈 논에 새까맣게 앉아 떨어진 알곡을 주워 먹던 기러기는 차량이 지나쳐도 본채만채 했다. 하지만 인기척이 느껴지면 놈들은 영락없이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올랐다. 겁을 상실한 기러기인가. 녀석은 나와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길가의 풀뿌리를 부리로 뜯어먹었다.나는 기러기를 지나치며 녀석이 날개를 펴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오른 날개깃이 땅에 끌리고 있었다. 녀석은 깃..

허균의 맛

책이름 : 허균의 맛지은이 : 김풍기펴낸곳 : 글항아리 군립도서관의 신간도서를 검색하다, 책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의 독서여정에서 감질나게 만난 책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의 최고 문장가·혁명가 허균(許筠, 1569-1618)이지 않은가. 부제가 ‘『도문대작』, 조선 미식 선비의 음식 노트’였다. 나는 ‘조선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을 떠올렸다. 음식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 음식평을 기대했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먹을 수 없는 처지이니 먹는 것을 흉내냄으로써 만족을 느껴보려는 심정의 표현이었다. 고전인문학자 김풍기(金豊起, 1961- )은 표제어..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책이름 : 세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지은이 : 리처드 도킨스외 30인옮긴이 : 김동광펴낸곳 : 포레스트북스 제1부 과학적 사고. 영국 진화생물학자·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 의문에 대한 답은 증거. 증거는 어떤 현상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보는 것(또는 듣는 것, 느끼는 것, 냄새 맡는 것 등)을 뜻한다. 잘못된 믿음을 주는 좋지 않은 증거들은 ‘전통’, ‘권위’, ‘계시’등. 영국 동물학자 메리언 스탬프 도킨스(Marian Stamp Dawkins, 1945- ), 어떤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한다고 해서 그 현장 자체의 가치를 손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노력은 그 가치를 높이는 것. 미국 문화인류학자 메리 캐서린 베이트슨(Mary C..

시간의 그물

책이름 : 시간의 그물지은이 : 이재무펴낸곳 : 문학동네 2주 만에 읍내에 발걸음을 하면서 군립도서관에 들렀다. 도서대여 목록에 시인 이재무(李載武, 1958- )의 묵은 시집 두 권이 올려 있었다. 『시간의 그물』·『푸른 고집』. 도서검색용 자판을 두드렸다. 찾는 시집이 3층 청소년자료실에 있었다. 2층 보관실의 또다른 시집을 사서에게 부탁했다. 내가 3층에서 갖고 내려온 시집과 사서가 들고 온 시집이 『푸른 고집』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한 권을 물리고 『시간의 그물』을 다시 검색했다.내가 시집에서 가장 먼저 펼치는 쪽은 말미의 해설이나 발문이었다. 본문의 시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으려는 궁색한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다. 반갑게도 발문을 쓴 이가 소설가 현기영(玄基榮, 1941 - ) 선생이었다. ..

공간미식가

책이름 : 공간미식가지은이 : 박진배펴낸곳 : 효형출판 코드#1Wit(재치): 재기발랄함이 살린 숨은 공간의 매력. 산책 문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브랜드, 영국 ‘헌터Hunter' 장화. 1902년 문을 연 뉴욕의 유서깊은 호텔 알곤퀸Algonquin의 ‘라운드 테이블 룸’. 유명한 벨기에 리에주Liege의 374개 단으로 이루어진 ‘몽타뉴 드 부랑Montagne de Bueren' 계단. 스케일의 힘이 느껴지는 인디애나폴리스 시내의 신호등. 런던 최초의 엘리베이터 사보이 호텔의 '붉은 승강기The Red Lift'. 그림은 국제적인 언어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 보자르 양식Beaux-Arts의 1903년 지어진 뉴욕 트라이베카 지역의 소방서. 남부도시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New ..

병오년丙午年 상강霜降의 텃밭

위 이미지는 24절기 가운데 열여덟 번째 절기인 상강霜降에 우리집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컷이었다. 상강은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들었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시기였다.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져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9월 들어 시작되는 추수는 상강 무렵이면 마무리가 되었다. 대빈창 들녘의 벼베기도 끝났다.텃밭이 훤하게 비었다. 김장채소 무와 배추가 한 두둑 반씩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무 두둑 옆 빈 두둑에 괭이밥이 가득했다. 잡초들은 서리가 내리면 뜨거운 물에 데쳐진 나물처럼 시들 것이다. 마당가 양옆 밭도 한쪽은 비었고 한쪽에 쪽파에 심겨졌다. 이제 월동작물 마늘과 양파를 파종하고, 김장을 담그면 병오년 텃밭농사도 마무리되었다. 내일모레 작은형이 입도入島하면 ..

텃밭을 부치다 2026.10.26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책이름 : 맹자의 땀 성왕의 피지은이 : 김상준펴낸곳 : 아카넷 사회학자 김상준(金相俊, 1960- )을 정기구독하는 인문생태 격월간지 『녹색평론』에서 만났다.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아카넷, 2021)에 이어 두 번째로 잡은 책이었다. 책들의 부피가 만만치않았다. 첫 책은 968쪽, 이번 책도 645쪽이었다. 사회학자는 ‘서구적 근대의 틀’을 파기하고 세계사를 새롭게 보는 틀로 ‘중층근대성론’을 내세웠다. 그가 말하는 근대는 성聖이 속俗을 ‘통괄적으로 포섭(통섭)’하던 시대에서 속이 성을 통섭하는 시대로 이행하였다는 것이다.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본문은 4부에 나뉘어 14장, 보론 3장으로 구성되었다.제1부 ‘중층근대와 유교’는 인류문명사의 흐름 전체를 다시..

이란-페르시아 바람의 길을 걷다

책이름 : 이란-페르시아 바람의 길을 걷다지은이 : 김중식펴낸곳 : 문학세계사 프롤로그 사막 가는 길: 바다를 건너는 낙타처럼, 사막을 건너는 고래처럼. 시인은 불모지에서 유랑을 선택(당)한 생물, 시인은 세상을 쓰레기라 여기고 경쟁 없는 먼 곳을 떠도는 족속. 고대 도시와 제국의 수도는 다 강이나 바다를 낀 물의 도시. 여행기는 야즈드(선사)―수사(고대)―페르세폴리스(고대)―시라즈(중세)―이스파한(근세)―커션(근대)―테헤란(현대) 순서. 역사의 주요 왕조들이 수도로 삼았던 도시들을 연대기적 흐름으로 따라가는 구성.1. 이란 가는 길: ‘인샬라’와 ‘인저 이란“, 두 얼굴의 이란. 페르시아는 2,500년전 인류의 첫 대제국을 건설, 네 차례 아케메네스, 파르티아, 사산, 사파비 왕조에 걸쳐 제국을 경영...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책이름 :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지은이 : 장석남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잘 이해도 되지 않는 신간 시집을 밀쳐놓고, 묵은 서정 시집을 잡기로 했다. ‘독특한 서정적 울림으로 등단 이후 꾸준히 독자와 평자의 사랑을 받아온’ 장석남(張錫南, 1965 - )의 시집들을 군립도서관에서 빌려왔다. 한꺼번에 빌려 온 두 권의 시집은 시인의 네·다섯번째 시집이었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비평사, 2001),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문학과지성사, 2005).시인은 “자기 자신과 더불어 모든 존재들의 골문을 지키는 것이 시인이라고. 타협할 대상도 없이 날아오는 공을, 부조리를, 어리석음의 파편을 끝까지 막아내야하는 것이 시인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부 구분없이 67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김연..

생명이란 무엇인가

책이름 : 생명이란 무엇인가지은이 : 폴 너스옮긴이 : 이한음펴낸곳 : 까치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1961), 유전학자 존 버든 샌더슨 홀데인(J. B. S. Haldane, 1892~1964)의 같은 표제 『생명이란 무엇인가』도 독서가들게 잘 알려져 있다.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폴 너스(Paul Nurse, 1949- )는 영국 생물학자였다. 그는 세포, 유전자, 진화, 화학, 정보라는 생물학의 5가지 원대한 개념을 통해 생명의 비밀을 밝혔다.1.세포―생물학의 원자. 생물학의 원리가 세포. 세포는 생물의 구조적 기본 단위. 생명의 기능적 기본 단위. 세포가 생명의 핵심 특징을 지닌 가장 작은 실체. 세포 분열은 모든 생물의 성장과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