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80

수마노탑(水瑪瑙塔)·폐사지(廢寺址)를 돌아보다 - 3

충주를 거쳐 온 남한강은 원주 부론에서 섬강을 품고 여주를 향해 흘러갔다. 원주의 폐사지 세 곳을 찾아 가는 길은 남한강과 섬강을 넘나들었다. 거돈사지에서 법천사지의 거리는 3㎞ 이었다. 녹색융단이 깔린 들녘의 하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사적 제466호 드넓은 법천사지가 나타났다. 절터는 삼면이 산으로 들러 쌓인 넓은 평지에 자리 잡았다. 폐사지는 발굴조사가 한창이었다. 잡풀이 자라면서 드러난 주춧돌을 다시 감추었다. 새로 발굴된 구역은 마사토를 깔고 잔디를 심으면서 점적관수로 물을 주었다. 새로 끼워 맞춘 장대석이 생경한 빛을 발했다. 11세기 걸작 중의 걸작이라는 국보 제59호 지광국사탑비가 지대 높은 만개한 밤나무 군락아래 있었다. 높이 4.55m에 달하는 지광국사 현묘탑비는 부도비 조성에 온갖 공..

수마노탑(水瑪瑙塔)·폐사지(廢寺址)를 돌아보다 - 2

흥법사지(興法寺址), 거돈사지(巨頓寺址), 법천사지(法泉寺址), 고달사지(高達寺址). 남한강변 4개의 폐사지(廢寺址)를 처음 접한 책은 1997년 출간된 민속학자 주강현의 『풀어낸 비밀속의 우리문화 2』 였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순조 23년(1823)에 젊은 선비 한진기는 한양에서 담양까지의 여로를 『도담행정기(島潭行程記)』에 담았다. 저자는 그 책을 나침반삼아 ‘역사 속으로의 여행’에서 ‘망한 절터’를 돌아보았다. 원주시 지정면의 흥법사지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다. 절터는 섬강이 앞으로 흐르고, 영봉산(靈鳳山)자락이 감싼 아늑한 터에 자리 잡았다. 만 여 평에 이르렀다는 절터에 보물 제464호 삼층석탑과 귀부와 이수만 남은 진공대사탑비가 있었다. 여의주를 문 용머리는 사나웠고, 지대석을 움..

수마노탑(水瑪瑙塔)·폐사지(廢寺址)를 돌아보다 - 1

수마노탑(水瑪瑙塔)과 폐사지(廢寺址)를 돌아보는 답사일정을 짰다. 4시30분 새벽기도 종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 7시에 주문도를 출항하는 삼보12호 1항차는 8시30분 화도 선수항에 닿았다. 강원 정선 정암사(淨岩寺)를 향해 엑셀레이더를 밟았다. 예상과 달리 너무 많은 차들이 길 위에 쏟아져 나왔다. 속절없는 시간만 흘러갔다. 정오가 넘어서야 강원 원주 치악휴게소에 닿았다. 치즈돈가스로 급히 허기를 때웠다. 사북에서 눈에 띄는 건물은 호텔뿐이었다. 80년대 중반, 나는 세상에 대한 알지 못할 원망과 분노로 막장인생에 다가섰다. 도계읍 대한석탄공사에서 퇴짜를 맞고 동원탄좌에 전화를 넣었다. 사북탄전에서 광부를 모집했다. 다음날 청량리역에서 예비광원들이 모여 사북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날 저녁 인천 십정..

울릉도-독도를 다녀오다-4

이미지는 내수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죽도와 관음도 앞바다이다. 첫날 울릉도 육로관광 A코스의 코끼리 바위가 바다에 떠있는 북면 평리에 가수 이장희가 거주하는 〈울릉천국〉이 있다. 나는 가수 이장희를 당대의 서태지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의 히트곡 「한 잔의 추억」, 「그건 너」는 애잔한 신파조의 트로트가 지배했던 음악계에 쏟아진 한 여름의 소나기였다. 버스기사의 말에 의하면 작년 겨울 울릉도에 2m의 눈이 쌓였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울릉도 바다의 영향 때문이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가수 이장희는 겨울 한철을 어떻게 보냈을까. 울릉도는 12월에서 3월까지 년중 1/3의 기간이 폭설과 풍랑으로 고립되었다. 도동항을 비롯해 관광 손님으로 먹고 살아가는 숙박·음식업소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

울릉도-독도를 다녀오다 - 3

B코스의 마지막은 내수전 전망대였다. 울릉도는 가는 곳마다 전망대가 설치되었다. 천혜의 자연경관과 더불어 일출과 일몰이 수려했다. ‘내수전’이라는 명칭은 개척민 김내수 씨가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는데서 연유했다. 해발 440m의 산정 전망대를 오르는 등산로는 동백과 마가목이 터널을 이루었다. 한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죽도가 코앞에 내려다 보였다. 울릉도를 빙 둘러싼 기괴한 형상의 바위들은 태평양의 푸른 물을 밀치고 태초에 화산섬이 솟아오를 때 튄 마그마덩어리였을 것이다. 저동항에서 12시 20분. 400여명의 인원을 태운 Sea Star 5호가 독도 관광에 나섰다. 13시 55분 독도에 접안했다. 독도는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된 섬이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km 지점에 있고, 총면적은..

울릉도-독도를 다녀오다 - 2

첫날 일정의 마지막 코스는 나리분지였다. 천부에서 오르는 나리분지 가는 길은 급경사였다. 합승버스의 엔진 덜덜거리는 소음이 요란했다. 울릉도의 최고봉은 해발 986.7m의 성인봉이다. 500고지의 나리분지에 우데기를 두른 너와집과 투막집이 이방인의 눈길을 끌었다. 우데기는 울릉도에서 가옥의 바깥쪽에 처마 밑을 둘러싸고 있는 방설(防雪)을 위한 외벽을 가리켰다. 울릉도 선주민을 눈 속에서 보호해주었던 옛집은 이제 관광객의 눈길을 벗어났다. 너와 지붕에 가려졌던 파란 루핑이 드러나 보기에 추했다.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 나리분지는 칼데라 분화구가 무너져 내려 형성되었다. 나리분지는 정수기능을 갖춘 거대한 물탱크였다. 물탱크의 물은 봉래폭로로 쏟아졌다. 신산한 삶이었을까. 얼굴가득 주름진 할머니 한분이 한약재 ..

울릉도-독도를 다녀오다

10. 2. 울릉도 가는 길은 멀었다. 삼보12호 주문도발 강화도 외포행 오후 2시배에 승선했다. 군내버스로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에 닿았다. 영등포행 88번 버스에 올랐다. 인원부족으로 일산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는 취소되었다. 절기 따라 낮이 짧아졌다. 이른 해가 떨어진 영등포역 앞은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역 맞은편 미로처럼 엉킨 먹자판 골목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치킨과 맥주로 저녁을 때우고, 잠자리에 누웠다. 몸은 무거웠지만 여행을 앞둔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새벽 2시. 눈이 떠졌다. 영등포 신세계백화점앞 두레관광버스에 올랐다. 새벽 3시. 30명의 울릉도 여행객을 태운 버스는 시동을 걸었다. 길거리 취객들의 고성을 뒤로 하고 시청, 잠실을 거쳐 서울을 빠져 나왔다. 새벽 6시 평창휴..

병산서원에 다녀오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1997, 창작과비평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 경북 북부』(1997, 돌베개) 『명묵의 건축』(2004, 안그라픽스)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3』(2006, 돌베개) 나의 뇌 주름에 병산서원 만대루을 입력시켜 한 번 가보라고 등태질한 책들이다. 굽이굽이 사행(蛇行)하는 낙동강변에 자리 잡은 병산서원에서 부용대까지 25분, 옥연정사에서 하회마을까지 15분이면 닿을 수 있다. 나의 발걸음은 30년이나 기다려야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80년대 중반으로 30년전 이었다. 나의 발길이 경북 내륙 안동에 닿았다. 그 시절 안동은 교통이 불편한 오지였다.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시외버스가 유일했다. 그때 하회마을 가는 길과 마을 고샅은 흙먼지 길이었다. 수령 600년이 ..

뜬돌과 낮꿈 - 5

대석단 아랫동의 댓돌에 등산화를 벗어놓고 들어섰다. 그때 스님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사람들은 남의 집에 올 때도 맨발차림이라니, 쯧쯧” 나는 화들짝 놀라 발을 내려다보았다. 보장각에 고려시대 화엄경각판(보물 제735호)와 조사당 벽화가 보관되었다. 사람들이 밀려들어 진열유물의 배치 순서대로 줄을 이어 앞사람을 따랐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낯익은 느낌에 고개를 치켜 들었다. 그렇다. 그녀가 입가에 갸날픈 미소를 띤 채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부석사 화장실은 부재가 널판지로 짜여 절집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이물스런 도기변기가 생경했다. 칸마다 머리위에 방충망이 덮였다. 대낮인데 형광등이 불을 밝혔고, 방충망 위 나방과 날벌레들의 사체가 쌓였다. 스님들의 어여쁜 마음씨가 엿..

뜬돌과 낮꿈 - 4

나는 조사당을 되돌아 나와 응진전과 자인당으로 향했다. 나이먹은 숲 그늘이 드리운 산길은 사람그림자 하나 없었다. 나는 새소리만 지저귀는 적막한 산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문득 오솔길에서 마주쳤던 여자가 떠 올랐다. 찰나지간. 하지만 그녀의 옷매무새며 표정이 확연했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 창백하다 싶을 정도로 흰 피부, 짧게 커트한 머리 모양새, 정강이까지 내려오는 청바지, 아! 허리에 주홍바탕에 물방울무늬가 그려진 블라우스 소매를 동였다. 엷은 보라색 티셔츠. 나는 머리를 저으며 응진전의 16나한상과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모신 자인당으로 들어섰다. 산길을 내려오자 무량수전 안마당에 관람객들이 꽤나 모여들어 사진촬영을 하거나 안양루 처마 앞 백두대간 연봉을 조망하고 있었다. 나는 현판이 공민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