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80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6

보종각의 보물 제277호로 지정된 고려동종이 답사객의 시선을 끌었다. 종신에 삼존상이 양각되었고, 한국종 특유의 용뉴와 음통이 있는 이 종은 원래 청림사 종으로 주조되었으나 폐사된 후 조선 철종때 내소사로 옮겨졌다. 내소사에는 보물 제278호로 지정된 법화경 절본사본 7권이 전해졌는데, 지금은 전주시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사본은 조선태종때 이씨부인이 남편 유근의 죽음을 애도하며 일자일배(一字一拜)의 정성으로 공양했다. 정성에 감동한 죽은 남편이 법화경 사경이 끝나자 이씨부인의 머리를 만졌다는 전설이 전했다. 시인 고은은 내소사를 찾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그런 아내가 이땅에 있었다는 실감이 갑작스러운 반감으로 깊어져서 오늘의 서울 부녀자들의 방자한 일락을 떠올린다. 방금 쓴듯한 청첩한 묵흔, 한..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5

곧장 천왕문으로 발길을 옮기려는 나의 눈길에 왼쪽 얕으막한 산자락의 부도밭이 뜨였다. 아! 이런 세심한 손길이 손님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분위기를 만드는구나. 막돌로 2층의 축대를 쌓아 공간을 마련하고 부도를 모았다. 흙과 암키와를 한단씩 번갈아 쌓아올려 키낮은 담장을 조성하고 지붕을 얹었다. 정면이 트인 ∏ 담장안에 海眼堂, 觀海堂, 滿虛堂. 복발형부도 9개와 받침돌 1개가 뒤에 도열했다. 앞줄에 비 3개가 나란히 섰는데 중간에 위치한 것은 한국서화사의 보고 ‘근역서화징’ 위창 오세창의 글씨를 모각했다. 한눈에 보아도 세월의 이끼를 먹지않은 근세의 부도들이지만 눈길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다감한 손길이 느껴졌다. 부도는 고승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안치한 석물로 선종이 발달한 통일신라 말기에 등장했다. 즉 조사..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4

부안읍에서 내소사 일주문 앞까지 30분이 걸렸다. 매표소에 이천원을 건네니 표를 두장이나 주었다. 전면에 직소폭포가 담긴 공원입장권 천원, 내소사 전경이 앞면을 차지한 문화재 관람료 천원 도합 이천원이었다. 내소사를 관람하는데 공원입장료를 부가했다. 내소사 일주문 코앞에 할머니 당산나무인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있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스님들과 입암마을 사람들이 함께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경내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인 수령 950년된 느티나무와 한짝을 이룬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되면서 습합현상으로 삼성각 등 토착신앙이 가람의 한귀퉁이를 차지하지만 이처럼 당산나무가 절안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없다고한다. ‘능가산내소사’ 일주문의 현판. 여기서 능가란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는 의미의 범어다. 내소사(..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3

이번 변산행은 나에게 세번 째 발걸음이었다. 앞서 두번은 바깥 변산의 적벽강과 채석강을 돌아보는 자연경관 유람이었다. 시선 이태백이 강물에 뜬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소동파가 노닐며 적벽부를 읊었다는 적벽강에서 이름을 따왔다. 중국의 채석강과 적벽강은 강(江)이지만 변산반도의 채석강, 적벽강은 퇴적과정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바닷가에 입체적으로 드러난 해안 퇴적암 절벽이었다. 들물에는 바닷물이 절벽을 차고 올라와 썰물때만 수십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같은 퇴적암절벽의 장관과 입구가 한반도 지도를 닮아 신비감마저 자아내는 해식 동굴을 볼 수 있다. 직행을 기다리며 아침을 해결했다. 터미널 옆 한식집을 찾아 콩나물국밥을 주문했다. 홀에 정장 차림의 젊은이가 혼자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어제 전..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2

다음날. 욕조에 쏟아지는 세찬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메모노트를 긁적였다. 어제밤 전주역. 광장너머 다운타운의 네온싸인만 명멸할 뿐 파랑새는 없었다. 아침 일찍 부안내소사 여정을 생각하고 시외버스터미널에 택시로 이동했다. 허기진 속을 채우려 터미널주변 식당을 찾았다. 한·중식 겸용식당. 난로가에서 중년여인 두명이 졸고 있었다. 잠이 덜깬 아주머니가 쟁반도 없이 맨손으로 짬뽕과 춘장, 단무지 종지를 들고왔다. 그들 모두 피곤해 보였다. 아니 눈에 뜨이는 모든 사물들이 피곤해 보였다. IMF시대 나만의 망막이상현상인가. 몸은 물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웠고 머리는 엉킨 실타래처럼 혼란스럽다. 잠결에 누군가 나를 주시하는 것 같아 눈을 뜨면 어이없게 손전화 충전기의 노란램프였다. 3,000원을 무인 티켓자판기 아가리..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1

그동안 나는 배낭여행을 통해 얻은 단상 부스러기들을 어줍잖게 한 기관지에 투고했다. 활자화된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무엇인가 빼먹은 것 같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국토에 산재한 문화유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지 못한 내가 어정쩡한 '답사기’나마 엮을 수 있게 도움을 준 책들을 글 말미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 분야의 알맹이없는 껍질뿐인 나의 지식으로 이글도 어줍잖은 답사기에서 한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다. 글을 이어가면서 도움이 된 책들을 먼저 열거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한국의 지명유래2, 한국의 전설기행, 전나무숲 지나 피안의 세계가.., 전북, 트레블, 자연사기행, 절을 찾아서, 나의문화유산답사기1·2, 마을로 간 미륵1,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다시 현실과 전통의 ..

청평사淸平寺의 입춘立春 - 5

산길을 내려오면서 구멍가게의 관람료 펫말을 보니, 보물 제164호인 회전문의 관람료였다. 그때 연인 한쌍이 구멍가게가 요구하는 관람료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발길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내소사와 선운사를 찾으면서 느꼈던 공원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의 이원화에서 오는 불합리가, 짬을 내어 우리 문화재를 찾은 손님들을 쫒아내고 있는 몰골이었다. 도대체 비행기처럼 허공에 떠있는 문화재가 있는가. 그는 구성폭포를 지나치다, 청평사 삼층석탑을 떠올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석탑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탑의 위치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폭포위 산중턱에서 중천에 떠오른 햇살을 되받아 반사시키는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삼층석탑 안내판일 것이 분명했다. 부처의 영원한 삶이 존재하는 탑은 사찰의 중심법..

청평사淸平寺의 입춘立春 - 4

멀리 해발 779m의 골산인 오봉산이 허리자락에 잔설을 두른 채 머리의 암봉을 드러냈다. 여기서부터 확트인 공간이 길손을 가람으로 안내했다. 거대한 돌을 잘 다듬은 돌계단에 올라서면 거대한 두 그루의 소나무가 일주문처럼 길손에게 여기부터 경내임을 알려주었다. 청평사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고려 광종24년(973)에 ‘승현선사’가 창건하고, ‘백암선원’이라 불었으나, 그리 오래지않아 폐사되었다가 문종 22년(1068)에 이개가 재건하여 ‘보현원’이라 했다. 그뒤 이개의 장남 이자현이 산이름을 청평(淸平)이라 고치고, 여러채의 전각을 짖고 문수보살에서 연유한 ‘문수원’으로 개칭했다. 경내에서 길손을 먼저 맞아주는 것은 윤회전생을 깨우치는 보물 제164호인 ‘회전문’이다. 회전문은 가람의 삼문(三門)중 중..

청평사淸平寺의 입춘立春 - 3

청평사를 오르는 길은 한폭의 산수화처럼 맑고 정갈했다. 겨우내 쌓인 눈이 산자락을 솜이불로 덮었고, 헐벗은 잡목들이 빼곡히 서서 한겨울의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계곡길을 어느만큼 오르자, 산중에 구멍가게가 자리 잡았다. 처마에 덧이은 투명 비닐포장에 떡볶이, 햄버거 등이 쓰인 꼬리표가 바람결에 휘날렸다. 다져진 눈길을 조심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난데없이 길과 마주한 창문이 열리면서 ‘표를 내라’는 중년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검게 썬팅한 창문으로 사람은 보이지 않고, 손만 내밀어졌다. “표가 없는데요, 매표소에서 그냥 가라고 해서...” “신도세요” “아닙니다” “오늘이 입춘이라, 신도로 알고 표를 안받은 것 같네요.” 그는 도둑질하다 들킨 심정으로 관람료를 건네주고 산길을 재촉했..

청평사淸平寺의 입춘立春 - 2

겹겹이 주름진 능선이 눈앞으로 다가오다, 산자락이 거무스름한 물길에 갇혔다. 옷벗은 잡목들이 희끗희끗한 잔설을 스치는 찬바람에 몸을 떨었다. 언젠가 한국화 도록에서 보았던 청전 이상범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그는 메모노트를 긁적이다, 학창시절 청평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던 동료를 떠올리고 배낭속의 손전화를 꺼냈다. 그녀가 ‘소양강댐은 3 ~ 4년에 한번씩 물을 방류하는데 지금 시기는, 특히 한겨울이라 수량이 많이 줄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눈앞의 산자락은 고교시절 상고머리처럼 밑부분이 맨땅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노트에 단상을 긁적이다,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무심결에 저지른 어이없는 실수에 그는 무츠름해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주인내외는 카운터앞 차탁에서 늦은 아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