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내려오면서 구멍가게의 관람료 펫말을 보니, 보물 제164호인 회전문의 관람료였다. 그때 연인 한쌍이 구멍가게가 요구하는 관람료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발길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내소사와 선운사를 찾으면서 느꼈던 공원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의 이원화에서 오는 불합리가, 짬을 내어 우리 문화재를 찾은 손님들을 쫒아내고 있는 몰골이었다. 도대체 비행기처럼 허공에 떠있는 문화재가 있는가.
그는 구성폭포를 지나치다, 청평사 삼층석탑을 떠올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석탑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탑의 위치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폭포위 산중턱에서 중천에 떠오른 햇살을 되받아 반사시키는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삼층석탑 안내판일 것이 분명했다. 부처의 영원한 삶이 존재하는 탑은 사찰의 중심법당 앞에 자리잡아야 제격이나, 강원도 기념물 제55호인 청평사 삼층석탑은 환희령이라 불리는 절로 가는 길목의 산등성이에 있었다. 그는 폭포위 계곡바위를 가로질러 산자락을 기어올랐다. 발자국하나 없는 미답의 눈이 겨우내 쌓여 등산화를 신은 발이 푹푹 빠져 들었다. 삼층석탑 앞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흡사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앞 전망을 줌인시킨 것만 같았다. 겹겹이 주름진 산능선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와 석탑은 오목한 항아리에 담긴 형국이었다. 석탑은 자연 그대로의 화강암 바위를 지대로 이층기단에 삼층탑신을 올렸는데, 소실된 상륜부에 눈이 소복히 쌓였다. 탑의 형태는 기단부 면석에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는데 통일신라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초 삼층석탑이었다. 별스런 탑의 위치 때문인 지 청평사 삼층석탑은 서글픈 전설을 간직한 채 일명 ‘공주탑’이라 불렸다.
중국 당태종은 여러 공주를 두었으나, 그중 세째 공주의 미모가 가장 출중했다. 대궐 중건에 동원된 도목수가 그녀에게 반해 상사병으로 죽은후 구렁이로 환생하여 공주 몸에 찰싹 달라붙어 그 누구도 어쩔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노한 당태종은 공주를 추방했고, 구렁이에게 몸이 감긴 공주는 여기저기를 여러해 떠 돌다가, 이곳 청평사 계곡까지 오게 되었다. 폭포가 떨어지는 맑은 소에서 공주가 제 신세를 한탄하며 쉬고 있을때, 갑자기 구렁이가 공주 몸에서 떨어져 소로 뛰어 들었다. 아마 구렁이는 소에 비친 공주의 모습이 진짜인 줄 착각했는지도 몰랐다. 절의 스님 도움으로 웅덩이에 구렁이를 수장시킨 공주는 그제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 당태종은 이 반가운 소식에 금덩어리를 보내 법당을 세우게 했다. 공주는 폭포위에 삼층석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은덕에 공양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공주탑이 지대로 삼은 바위에 앉아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하지만 현실이라는 장벽이 그에게 너무 무거웠다. 답답하고 아쉬운
한숨을 내쉬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산을 바라보았다. 위락시설단지를 지나자 속계에서 피안의 세계를 찾아드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선착장과 잇닿은 눈덮인 산자락에 젊은이들이 휴대용 돗자리를 썰매로 삼아 미끄럼을 지쳤다. 그는 다시 속계로 나가는 배에 올랐다. 그러고보니 청평사행 뱃길인 소양강은 그리스신화의 ‘레테의 강’이었다. 선착장에서 댐 정상으로 오르는 길가의 노점상들은 하나같이 삶은 소라를 수북히 쌓아놓고, 길손을 유혹했다. 그는 좌석버스를 이용해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 닿았다. 춘천이 자랑하는 먹거리 닭갈비로 늦은 점심을 때우려 식당문을 밀쳤다. 1인분은 마련할 수 없다는 주인아주머니의 아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춘천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기차표를 확인했다. 꽤 먼거리인 춘천역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끝)
'배낭메고 길나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2 (0) | 2014.03.12 |
---|---|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1 (0) | 2014.03.10 |
청평사淸平寺의 입춘立春 - 4 (0) | 2014.02.05 |
청평사淸平寺의 입춘立春 - 3 (0) | 2014.02.03 |
청평사淸平寺의 입춘立春 - 2 (0) | 2014.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