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욕조에 쏟아지는 세찬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메모노트를 긁적였다. 어제밤 전주역. 광장너머 다운타운의 네온싸인만 명멸할 뿐 파랑새는 없었다. 아침 일찍 부안내소사 여정을 생각하고 시외버스터미널에 택시로 이동했다. 허기진 속을 채우려 터미널주변 식당을 찾았다. 한·중식 겸용식당. 난로가에서 중년여인 두명이 졸고 있었다. 잠이 덜깬 아주머니가 쟁반도 없이 맨손으로 짬뽕과 춘장, 단무지 종지를 들고왔다. 그들 모두 피곤해 보였다. 아니 눈에 뜨이는 모든 사물들이 피곤해 보였다. IMF시대 나만의 망막이상현상인가. 몸은 물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웠고 머리는 엉킨 실타래처럼 혼란스럽다. 잠결에 누군가 나를 주시하는 것 같아 눈을 뜨면 어이없게 손전화 충전기의 노란램프였다.
3,000원을 무인 티켓자판기 아가리에 들이밀자 버스표와 200원을 토해냈다. 무인자판기만이 벽면을 따라 등을 맞대고 여행객을 노려보는 남녁 겨울 도시터미널의 풍경은 을씨년스럽다. 찝찌름한 자판기 커피를 허전한 심정에 들이부었다. 전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안행 직행에 몸을 실었다. 도시의 거리를 밤의 찌꺼기가 부유물처럼 떠다녔다. 이른 아침 목적지를 향하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교외 풍경은 한겨울의 찬 대기로 유리알처럼 투명했다. 그때 포라로이드 카메라처럼 순간적으로 나의 망막에 현상되는 하나의 풍경. 한 중년여인이 보도블럭을 따라 느린 걸음걸이로 거슬러올라왔다. 그 여인은 옆구리에 보자기로 싼 물건을 낀채 종종걸음을 쳤다. 나의 눈길을 끈것은 보자기에 새겨진 심볼과 로그였다. 하늘색 바탕에 붉은 마름모꼴 모서리마다 네개의 원이 그려진 20년전 그 정당의 심볼.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자 이곳 사람들이 ‘징게맹개 외배미들’이라 부르는 우리나라 최대곡창지대인 김제만경평야가 나타났다. 그루터기만 남은 쓸쓸한 들녘이 끝없이 펼쳐졌다. 망망대해의 섬들처럼 낮은 구릉마다 시골마을이 터 잡았다. 먼지를 뽀얗게 쓴 퇴락한 슬레이트 촌가 위에 교회첨탑만 뾰족하게 위용을 자랑했다. 김제터미널에 버스가 정차한 잠시 파랑새가 전파를 타고 날아왔다.
부안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내소사행 직행은 하루에 한 대 뿐이었다. 부안은 변산반도로 해안선을 따라 외변산, 내륙을 내변산이라 불렀다. 바다와 산 그리고 들녘을 고루 갖춘 부안은 “답사여행의 보고”로 손꼽혔다. 고인돌떼가 구암리에 자리잡았고, 부안읍에 농경문화의 현장으로 석간당산과 돌장승이 있다. 바닷가 절벽에 서해신을 모신 수성당, 백제 부흥운동의 중심지 울금산성 그리고 천연기념물 제122호, 제123호, 제124호로 지정된 호랑가시나무, 후박나무, 꽝꽝나무군락과 바닷가 퇴적암 절경지인 채석강과 적벽강이 있다. 가람으로 내소사와 개암사가 답사객을 손짖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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