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4

대빈창 2014. 4. 21. 07:23

부안읍에서 내소사 일주문 앞까지 30분이 걸렸다. 매표소에 이천원을 건네니 표를 두장이나 주었다. 전면에 직소폭포가 담긴 공원입장권 천원, 내소사 전경이 앞면을 차지한 문화재 관람료 천원 도합 이천원이었다. 내소사를 관람하는데 공원입장료를 부가했다. 내소사 일주문 코앞에 할머니 당산나무인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있다.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스님들과 입암마을 사람들이 함께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경내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인 수령 950년된 느티나무와 한짝을 이룬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되면서 습합현상으로 삼성각 등 토착신앙이 가람의 한귀퉁이를 차지하지만 이처럼 당산나무가 절안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없다고한다.

‘능가산내소사’ 일주문의 현판. 여기서 능가란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는 의미의 범어다. 내소사(來蘇寺)라는 가람이름의 유래을 찾아 '한국지명의 신비'를 펼쳤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정벌시 이곳에 와 시주하여 ‘소정방이 왔다’는 뜻과 내자개소(來者皆蘇) - 오는자는 모두 소생한다 - 는 불가의 진리를 함축한 말이라는 두가지 연원이 실려있다. 하지만 내소사는 백제무왕 34년(633)에 혜두구타가 소래사란 이름으로 창건했는데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고, 지금의 내소사는 예전의 소소래사라고 한다. 그런데 전자는 조선성종때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 소래사라고 적혀있어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것은 지역 민중들의 백제유민의 한이 절이름에 투영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소정방과 연관된 또다른 이름은 개암사에 전해왔다. 울금바위는 소정방이 김유신과 이곳에서 승전의 기쁨을 나누어 우금암(遇金岩)이라 한다. 민중들은 이렇게나마 치욕의 한을 나름대로 자기역사로서 절이름과 바위에 전설로서 입력시켰다.

세속의 번뇌를 잊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일주문을 지나면 놀랍게도 울창한 전나무숲이 답사객을 맞아 주었다. 유서깊은 고찰을 찾아가는 초입길의 울창한 숲이 기억에 남는 절은 해남 대둔사의 너부내계곡을 따라 들어가는 10리길과 영주 부석사의 천왕문이 은행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진입로였다. 하지만 한겨울 울창한 침엽수가 내뿜는 맑은 향기를 마시며 절로 향하는 내소사 진입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도록 운치가 빼어났다. 천왕문에 이르는 600여m의 전나무 터널은 한마디로 청신한 기운이 온몸으로 파고 들었다. 드문드문 산죽이 군락을 이루었고 하늘을 찌를듯한 빽빽한 전나무숲을 파고든 겨울햇살이 흙길에 금물결을 이루었다. 자연스럽게 속세의 때를 벗겨 마음을 누그리는 전나무 숲길은 조성된지 고작 50년밖에 안 되었다. 해방직후 조림된 숲은 50년 밖을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풍스럽고 명징한 절집 내소사의 이미지는 이렇게 눈길을 거슬리지 않으려는 조형적 안목이 있기에 편안했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해묵은 단풍나무가 길옆에 도열한 정면에 천왕문이 보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