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길나서다

나그네는 파랑새를 보았는가 - 5

대빈창 2014. 4. 23. 07:27

 

곧장 천왕문으로 발길을 옮기려는 나의 눈길에 왼쪽 얕으막한 산자락의 부도밭이 뜨였다. 아! 이런 세심한 손길이 손님을 편안하게 맞아주는 분위기를 만드는구나. 막돌로 2층의 축대를 쌓아 공간을 마련하고 부도를 모았다. 흙과 암키와를 한단씩 번갈아 쌓아올려 키낮은 담장을 조성하고 지붕을 얹었다. 정면이 트인 ∏ 담장안에 海眼堂, 觀海堂, 滿虛堂.  복발형부도 9개와 받침돌 1개가 뒤에 도열했다. 앞줄에 비 3개가 나란히 섰는데 중간에 위치한 것은 한국서화사의 보고 ‘근역서화징’ 위창 오세창의 글씨를 모각했다. 한눈에 보아도 세월의 이끼를 먹지않은 근세의 부도들이지만 눈길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다감한 손길이 느껴졌다. 부도는 고승들의 유골이나 사리를 안치한 석물로 선종이 발달한 통일신라 말기에 등장했다. 즉 조사신앙의 결과물이었다. 양식은 처음에 국보 제104호 염거화상 부도로 대표되는 팔각원당형이었고, 고려때는 지광국사 부도에서 평면방형으로 이행했다. 고려말이 되면 스님들의 부도가 유행하면서 복발형 부도가 등장하고, 뒤이어 제일 눈에 많이 뜨이는 석종형 부도가 나타났다.

천왕문 좌우로 낮은 돌담장을 쌓아 경내를 구역지었다. 천왕문은 어느 절이나 마찬가지로 사천왕이 험한 인상으로 도솔천을 수호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손에 지물로 동방지국천왕은 검을, 남방증장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서방광목천왕은 삼지창과 보탑을, 북방다문천왕은 비파를 들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낮은 축대와 계단으로 인해 절안으로 들어갈수록 높아졌다. 시야를 가로막는 봉래루는 정면5칸, 측면3칸의 2층 누각으로 대웅전과 마주보고 서있다. 20개의 크기와 높이가 다른 천연 주춧돌위에 기둥을 세워 그에 따라 나무기둥도 길고 짧았다. 우측 정면2칸과 측면2칸을 널판지로 막아 기념품가게를 마련했다. 나는 절집가게에서 벽걸이용 수건과 새로 출간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 上’을 구입했다. 글을 이어가며 사진을 보니 답사여행마다 함께 하는 녹색배낭이 좌측정면 기둥에 등을 기대었다. 아마 봉래루를 사진찍느라 잠시 뉘여 놓았을 것이다.

봉래루 우측 구석에 해우소가 대숲에 둘러쌓여 오붓이 자리잡았다. 주말을 맞아 절을 찾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현대식 화장실로 발길을 돌렸다. 해우소(解憂所) - 근심을 해소하는 곳. 이 얼마나 낭만적인 이름인가. 나는 요즘 어느 요구르트 회사의 TV광고를 떠올리고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노스님이 해우소에서 일을 보고, 한겨울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사미승은 손씻을 물을 들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