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종각의 보물 제277호로 지정된 고려동종이 답사객의 시선을 끌었다. 종신에 삼존상이 양각되었고, 한국종 특유의 용뉴와 음통이 있는 이 종은 원래 청림사 종으로 주조되었으나 폐사된 후 조선 철종때 내소사로 옮겨졌다. 내소사에는 보물 제278호로 지정된 법화경 절본사본 7권이 전해졌는데, 지금은 전주시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사본은 조선태종때 이씨부인이 남편 유근의 죽음을 애도하며 일자일배(一字一拜)의 정성으로 공양했다. 정성에 감동한 죽은 남편이 법화경 사경이 끝나자 이씨부인의 머리를 만졌다는 전설이 전했다. 시인 고은은 내소사를 찾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 그런 아내가 이땅에 있었다는 실감이 갑작스러운 반감으로 깊어져서 오늘의 서울 부녀자들의 방자한 일락을 떠올린다. 방금 쓴듯한 청첩한 묵흔, 한획 한획의 신운이 감도는 자획은 감동을 넘어서게 한다. -
기암절벽을 향해 날아오르는 거대한 학. 내소사 대웅보전. 내소사 답사의 백미는 대웅보전에 있다. 전형적인 암산인 능가산은 육체미 선수의 근육질을 자랑했다. 대웅보전은 팔작지붕의 나래를 맘껏 펼치고 있었다. 내소사의 가람배치는 □형. 안쪽 높은 축대위에 본전인 대웅보전이 자리 잡았고, 한단아래 정면으로 봉래루가 그리고 좌우로 고식의 설선당과 신축한 무설당이 위치했다. 보물 제291호인 대웅보전은 조선인조 11년에 건립된 정면3칸, 측면3칸의 단층 팔작지붕이었다. 대웅보전의 건립에 들인 무궁한 공력은 전설을 낳았다. 이 건물은 못하나 쓰지않고 나무토막을 깍아 끼워 맞추었다. 그런데 대웅보전 앞 천장에서 오른쪽이 왼쪽에 비해 나무 한개가 부족하다고 한다. 전해져오는 얘기로 절중건시 대목이 대웅전을 지을 생각은 않고 3년동안 목침만 깎아 토막을 만들었다. 이에 장난기 많은 한 사미승이 토막을 한개 감추었고, 대목은 나무깎기를 끝내고 토막을 샘하는데 한개가 모자르자 자신의 실력을 탓하면서 법당짓기를 포기했다. 그제야 사미승이 토막을 내놓자 대목은 부정탄 재목은 쓸수없다며 그 토막을 버리고 그대로 대웅전을 완성했다. 한편 정면3칸 여덞짝의 사방연속무늬 꽃창살은 장식문양의 극치였다. 비바람에 씻겨서 지금은 나무빛깔과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나 오히려 그 공력과 정성이 빛을 발했다.
회원대상으로 설화적, 피안적 파랑새가 내소사 대웅보전에 있었다. 미당 서정주의 ‘내소사 대웅전 단청’에도 나와 있듯 법당내부 단청에 한 군데 빈곳이 있는데 그곳을 전설이 메워주고 있었다. 법당 공사가 끝났을 때 한 화공이 찾아와 무보수로 단청을 맡으면서 한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100일동안 아무도 법당안을 들여다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난기많은 그 사미승이 궁금증을 못이기고 99일째 되는날 창구멍으로 법당을 들여다보았다. 대웅보전안에는 금빛새 한마리가 제 몸에서 나는 물감으로, 입에 붓을 물고 채색하고 있었는데 인기척에 놀라 그냥 날아가버렸다. 그래서 선녀와 용그림이 대칭을 못이루고 왼쪽에만 그려졌다고한다. 동해 낙산사 창건설화에 관음보살의 현신으로 파랑새가 나타났다. 여기 내소사의 금빛새는 또다른 관음보살이 아니었을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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