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파랑새를 찾기란 난감한 노릇이었다. 낯선 곳에서 시간을 판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터미널 맞은 건물 2층의 커피숖으로 발길을 돌렸다. 넓은 홀 테이블은 생기발랄한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젖 비린내도 가시지 않았을 여자애들이 하나같이 담배를 꼬나물었고 실내는 캐롤송이 난무했다. 어제와 오늘
무겁고 탁한 분위기로 나의 어투는 어눌했고 생각은 갈피를 못 잡았다. 여기는 별천지인가. 나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사람처럼 원두커피를 냉수마시 듯하고 길거리로 나왔다. 그동안 가슴 한구석에 뭉쳐있던 반감이 치솟았다. 행로를 잡지 못하고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섰을 때 그 무겁고 답답한 느낌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불현듯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 스크린에 떠 올랐다. 난장이가 웃옷을 벗어던진 채 대합실의 기물을 닥치는대로 부수었다. 휴일 대합실에 가득 들어차 있던 사람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여기저기 여자들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난장이가 출동경찰에 연행되고 사태가 진정되었다. IMF는 경제적, 물질적 궁핍을 넘어서 정신적 파괴를 동반했다.
짧은 겨울해가 어느덧 빠르게 서산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창행 직통에 몸을 실었다. 막막한 심정은 일정을 하루 앞당겨 고창 선운사를 찾고 싶었다. 거기에 역사적 파랑새의 현장이 있었다. 버스는 어둠속의 김제만경 평야를 달렸다. 그때 파랑새가 전파를 타고 날아왔다. 나는 할 수없이 흥덕에서 도중하차하고 전주로 되돌아왔다.
나그네 : 현실이 고달플수록 파랑새의 현신은 값어치가 있을텐데.
파랑새 : 나는 지쳤어요. 현신할 힘도 잃었고요.
나그네 : 그래도, 파랑새가 영혼에 상처를 입으면... 그건 너무 암담해요.
파랑새 : 쉬고 싶어요. 은둔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그네 : ...
파랑새는 쉬고 싶어했다. 나그네는 잡을 수가 없었다. 아픔을 이해하고 싶었기에. 나그네는 만취가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무엇인가에 놀란 파랑새들이 머리속을 마구 휘저으며 날아 다녔다. 다음날 아침 다시 초원식당을 찾았다. 전주에서 정읍가는 길 양안은 낮은 구릉마다 과수원이 진을 치고 있었다. 차창으로 비친 나무들이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가지마다 무엇인가 매달았다. 차창에 눈을 바짝 들이대니 봉지를 벗기지 않고 과일을 수확해 잎이 진 앙상한 가지마다 수많은 봉지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흥덕에서 선운사까지 시내버스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제 하필이면 나는 흥덕에서 도중하차했을까. 파랑새는 나에게 다른 선운사행 길을 알려 주었다.
고창은 전북의 서남끝에 있다. 판소리를 정리한 동리 신재효와 시인 미당 서정주의 고향이다. 조선초에 축성된 모양성은 원형이 잘 보존된 읍성으로 윤달, 그중 윤삼월에 효험이 크다고 아녀자들의 성밟기가 지금도 성행한다. 도산리, 상갑리, 매산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밀집지역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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