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에 붙어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으니 여기도 내소사와 매한가지였다. 다만 선운사 대웅보전 전경이 앞면을 차지하고 있는 영수증이 한장이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도대체 공중에 떠있는 문화재가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차라리 선운사 입장료로 관람권을 통일하였으면 여행객의 마음만이라도 편할 것이다. 선운사 가는길 양안에 풍천장어 전문요리집들이 말그대로 양안에 빼곡했다. 선운사입구 관광단지의 드넓은 광장 한켠을 둘러 싼 호텔을 비롯한 숙박집과 식당, 기념품가게가 깨끗하게 보였다.
선운사 진입로에 발을 들여 놓으면 계류건너 바위절벽을 덮은 기이한 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된 송악이다. 높이가 15m로 내륙에 자생하고 있는 송악 중에 제일 크다. 송악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 식물로 동쪽으로 울릉도, 서쪽으로 인천 앞바다의 섬들까지 퍼져 있지만 내륙으로 이곳이 가장 북쪽이다. 특이한 것은 덩굴성 식물인데 덩굴손으로 옆의 물체를 감는 것이 아니라 줄기에서 공중뿌리가 나와 암벽등반가처럼 다른 물체의 표면을 타는 신기한 습성을 가졌다. 남녁에서 송악을 일러 소가 잘먹는다고 하여 소밥이라고도 불렀다.
도솔산에 자리잡은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와 의운국사가 신라 진흥왕의 시주로 창건했다. 창건설화로 죽도포에 돌배가 떠내려와 사람들이 끌어올리려 했으나 배가 자꾸 바다로 떠났고, 이에 검단선사가 다가가니 배가 저절로 되돌아와 본래 연못인 이곳을 메우고 절을 세웠다. 이 지역은 도적들이 들끓었는데 검단선사는 이들을 불법으로 교화하고, 천일염을 제조하는 방법을 가리켜 생계를 꾸리게 했다. 교화된 도적들은 마을을 검단리라 하고 매년 봄․가을에 선운사에 소금을 보냈는데 이를 보은염이라 했다.
선운사 큰절의 정문은 이층 누각인 천왕문으로 아래층에 사천왕을 모시고 위층은 종루로서 여느 절에서 볼 수없는 특이한 맞배지붕의 건물이었다. 정작 여기서 답사객의 눈길을 끄는 것은 신장의 발아래 짖밟힌 음녀의 눈길이다. 신장은 음녀의 치마자락을 치켜올려 아랫도리를 무지막지한 발길로 짖밟았다. 음녀의 오른눈은 고통에 찌푸렸지만, 왼눈은 그 상황에서도 신장을 빤히 쳐다보며 욕정을 드러냈다. 사천왕과 아귀는 온통 흙먼지로 뽀얗다. 도덕적 분노로 휩싸인 사천왕이 아귀가 불계에 들지 못하도록 처벌하는 아수라 현장의 처참함으로 보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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