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18

무릎 반월연골판 봉합술

수술한 지 2주가 지났다. 실밥을 뽑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보름 전이었다. 뒷집 형수가 파김치를 담겠다고 마당가의 월동 쪽파를 함지박에 뽑아 놓았다. 파킨슨병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쪽파를 다듬으려 하시기에 나는 마루에 비닐과 신문지를 깔고 의자를 준비했다. 어머니가 쪽파를 다듬으며 나오는 껍질과 뿌리 잔챙이를 그러모아 마당건너 산자락에 쏟아버리고 방으로 들어왔다.온돌방 앉은뱅이책상 노트북에 앉았다. 하루에도 예닐곱 번씩 반복되는 동작이었다. 왼발이 장판에 미끄러지며 무릎이 접질렸다.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20여 년 전 공을 차다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은 무릎이었다. 무릎이 곧게 펴지지 않았다. 마루에 나갈 수조차 없었다. 작은형한테 전화를 했다. 내일 아침배로 섬에 들어오시라고. 통증에 잠..

고니의 고독

큰고니는 오리과로 동아시아·북유럽·러시아 등에 분포하며 흑고니, 고니와 함께 월동하는 겨울철새이다. 몸길이는 약 152㎝이고, 날개를 편 길이는 약 225㎝이다. 암수 모두 흰 깃으로 백조白鳥라고 한다. 호수·논·습지·해안·간척지에서 수초, 조개, 물고기 등을 잡아먹고 산다. 우리나라는 천연기념물 제201-2호 및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월동하는 무리는 100개체 미만으로 조사되었다. 대빈창 들녘을 찾은 진객珍客을 만난 것은 스무날 전이었다. 고니는 가족 단위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내 눈에 뜨인 고니는 홀로였다. 녀석은 동료와 떨어져 고독하게 텅 빈 논을 소요하고 있었다. 큰 덩치와 부리 절반이 노란 반점으로 뒤덮여, 녀석은 틀림없이 큰고니였다. 저녁 산책에서 대..

기러기의 구토

프랑스의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그는 “작가는 쓰여 진 말을 가지고만 행동해야 한다”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수식어를 원치 않았다.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자로 ‘영예’보다 ‘신념’을 택했다.사르트르의 1938년 출간된 장편소설 『구토』는 일기체 형식의 작품으로 그의 철학적 사유와 체험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20세기 사상과 문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실존주의를 세상에 선언한 소설이었다. 나는 아직 소설을 읽지 못했다. 철학자의 글을 단편적으로 접했을 뿐이다. 위 이미지를 접하며 철학자의 소설을 떠올렸다. 벌써 ..

농기계순회수리

바야흐로 절기는 날이 풀려 봄기운이 돋고 초목이 싹트는 우수雨水를 지나,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벌레들이 활동을 시작한다는 경칩驚蟄이었다. 2025년 을사년 乙巳年에도 농기계수리가 2. 27 ~ 3. 1까지 2박3일간 여지없이 진행되었다. 농기계순회수리는 연중행사였다. 이미지는 농기계순회수리 첫날 주문도 정미소 공터였다. 살곶이 선착장에서 주문1리(진말)을 지나 주문2리(느리 마을)로 향하는 아스팔트가 훤하다.왕복 2차선에 시속 30㎞에 불과하지만 서해의 작은 외딴섬의 아우토반이었다. 주문도와 아차도, 아차도와 볼음도을 잇는 연도교連島橋 착공에 들어가면서 길닦이가 한창이었다. 다른 해보다 올해 유달리 고장 농기계가 많았다. 트랙터, 트레일러, 경운기, 분무기, 예초기…가 농기계수리 기사들의 손..

새해농업인실용교육

강화군은 1읍12개면으로 구성되었다. 교동대교가 2014년도, 석모대교는 2017년도에 완공되었다. 강화도의 행정구역에서 부속도서로 섬다운 섬은 서도면西島面이 유일했다. 강화도의 서쪽에 위치한데서 이름을 얻었다. 서도 군도群島는 사람 사는 섬으로 면소재지 주문도, 가장 넓은 면적의 볼음도 그리고 아차도, 말도 네 개 섬과 무인도 9개 섬으로 이루어졌다. 주민들의 특별요청으로 5년여 만에 섬마을에서 〈2025 서도면 새해농업인실용교육〉이 열렸다. 이미지는 지난달 20일 볼음1리 마을회관의 교육 장면이다. 흔히 농민들은 예전처럼 ‘새해영농설계교육’이라고 불렀다. 2020년 코로나19가 무섭게 번지면서 새해영농교육은 중단되었다. 더군다나 이 땅의 농업정책은 농민말살정책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흔이 넘..

2025년 을사년乙巳年, 정월대보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을사년乙巳年 정월대보름 새벽 5시였다. 부엌으로 나가 밥솥에 앉힐 쌀을 씻었다. 빈 내솥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어제 저녁 감나무집 형수가 오곡밥을 지어와 보온에 맞추어놓았다. 괜한 덧일을 했다. 심야전기보일러 순환모터가 또 말썽이다. 현관문을 열자 어두운 하늘을 빗겨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정월대보름, 김포 한들고개 언덕집에 살 때, 어머니는 텃밭에서 짚단에 불을 붙여 달님에게 막내아들의 소원을 비셨다. 설날 때 먹다 남은 딱딱하게 굳은 가래떡을 짚불에 구워먹었다. 풍랑·강풍 특보로 설연휴 이틀동안 카페리호가 결항되었다. 설날 아침 객선이 출항했다. 작은형한테 전화를 넣으니, 치핵이 또 말썽이었다. 차린 음식만 저녁배로 보내고 작은 형은 인천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

눈길... 지구가열화

올 겨울은 눈이 잦습니다. 제가 살아가는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는 눈이 귀한 섬입니다. 입춘 추위가 시작된 지 5일 지났지만 매서운 동장군은 여전합니다. 삼한사온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넉가래와 빗질로 마당에 쌓인 눈을 치웠습니다. 텃밭 계단을 내려서면 창고 한 칸, 우리집 지킴이 느리의 집앞 눈도 쓸어냈습니다.늦은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주문도에 블리자드blizzard가 닥쳤습니다.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몹시 추운 날씨에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에 몸이 휘청거렸습니다.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산책 A코스를 버리고, 봉구산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나의 비밀 B코스입니다. 이미지는 ‘강화도 나들길’ 이정표가 서있는 산중 옛길입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룬 봉구산은 맵찬 바람을 ..

토건공화국의 미학

한국 사회는 절대적 토건국가다. 전체 국민 1인당 GDP의 20%를 차지하여, 선진국의 2배에 달하는 비중을 자랑(?)한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대를 경제적으로 규정하는 용어로 '개발독재' 시대라고 한다. 이 독소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각인되어 사회적 암으로 작동하고 있다. 개발주의는 무조건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무분별한 개발을 절대선으로 여겼다. 개발국가란 '국가가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개발의 주체’였다.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더 많은 성장의 도구로 여기는 파괴적 개발의 주체로 구실하는 국가였다. 한국은 개발국가 중에서도 가장 타락한 토건국가였다.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하여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국가'로서 국토파괴는 그 맹목성과 폭력성, 반민주성은 가히 상대를 찾을 수가 없다.(사회학자 홍성태..

시인과 선창에서 막걸리를

도선 삼보12호는 아차도, 볼음도를 거쳐 서도 군도를 빠져 나와 석모도와 화도 장곶 사이 좁은 해협을 가로질러 강화도에 닿았다. 예전 삼보해운 배들의 정박지는 외포항이었다. 교동도와 석모도에 다리가 놓였고 항구에 모래가 쌓이면서 외포항은 선창의 기능을 잃었다. 주문도에서 석모도 어류정항까지 1시간이 걸렸다. 이쯤이면 몸이 굼실굼실한 승선객들은 객실에서 일어서 바깥풍경을 보기 마련이었다. 객실창을 통해 마주보이는 강화도 포구가 건평항乾坪港이었다.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가는 길이었다. 걸음걸이가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나는 2층 객실에 올라가지 않고 내내 차안에 있었다. 마주보이는 건평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머니는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건평이구나! 하셨다. 당신은 그 시절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외삼촌은..

2024년 갑진년甲辰年, 마지막 해넘이

2024년 갑진년甲辰年, 마지막 해넘이 시각은 오후 5시 26분이다. 위 이미지는 5시 16분에 잡았다. 저녁 산책에서 대빈창 전망대에 도착한 시간이었다. 무인도 분지도의 실루엣이 뚜렷했다. 새해 첫 포스팅을, 2025년 을사년乙巳年 해돋이가 아닌, 지난해의 해넘이로 잡은 것은 주문도 삶을 회상하고 싶었다.2008년 11월 2일. 어머니를 모시고 주문도에 이삿짐을 풀었다. 작은형과 서울 사시는, 어머니의 유일한 핏줄 이모와 이종사촌도 함께 섬에 들어와 이사를 도왔다. 이모는 언니가 마지막 생을 꾸릴 곳이 궁금하셨을 것이다. 이삿짐을 단출하게 줄였지만 1톤 포터로 두 대가 되었다. 이사를 오기전 나는 집을 단장했다. 가전제품 냉장고, 세탁기를 미리 들였다. 벽지를 새로 발랐다. 내방의 한 벽을 책장으로 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