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2024년 갑진년甲辰年, 마지막 해넘이

대빈창 2025. 1. 2. 07:30

 

2024년 갑진년甲辰年, 마지막 해넘이 시각은 오후 5시 26분이다. 위 이미지는 5시 16분에 잡았다. 저녁 산책에서 대빈창 전망대에 도착한 시간이었다. 무인도 분지도의 실루엣이 뚜렷했다. 새해 첫 포스팅을, 2025년 을사년乙巳年 해돋이가 아닌, 지난해의 해넘이로 잡은 것은 주문도 삶을 회상하고 싶었다.

2008년 11월 2일. 어머니를 모시고 주문도에 이삿짐을 풀었다. 작은형과 서울 사시는, 어머니의 유일한 핏줄 이모와 이종사촌도 함께 섬에 들어와 이사를 도왔다. 이모는 언니가 마지막 생을 꾸릴 곳이 궁금하셨을 것이다. 이삿짐을 단출하게 줄였지만 1톤 포터로 두 대가 되었다. 이사를 오기전 나는 집을 단장했다. 가전제품 냉장고, 세탁기를 미리 들였다. 벽지를 새로 발랐다. 내방의 한 벽을 책장으로 꾸몄다. 어머니방과 내 방에 이불장, 옷장을 들이고 서랍장도 장만했다.

어머니는 김포 한들고개 언덕집의 큰 항아리와 손때 묻은 장롱을 두고 온 것을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이사할 섬집에 장롱은 덩치가 커 들일 수가 없었다. 다만 번거롭더라도 키 큰 장항아리 서너 개는 가지고 왔어야했다. 이삿집 싣는 차공간이 부족했지만. 후회가 일었다. 한 달이 채 가기 전에 김포 옛집에 갔으나 벌써 누군가의 손을 탔다.

이모는 김장 새우젓 산다는 핑계로 찬바람이 불기 전 한번은 섬에 들어오셨다. 몸이 불편한 나이 드신 자매가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 짠했다. 섬으로 이사하기 전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를 봉구산 아름드리 나무아래 임시로 가매장을 했다. 섬주민이 된 다음해 봄 모과나무 4년생을 산림조합 나무시장에서 사와 텃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아버지를 이장하고 작은 와비석을 세워드렸다. 팔년 전 누이동생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축대 밑 아버지 수목장나무 옆의 매실나무에 누이를 묻었다. 삼년전 아버지와 누이 나무 중간에 삼년생 대추나무를 심었다. 어머니가 눈치채셨다. 당신의 무덤이라는 것을.

새해에는 심야전기보일러도 교체해야겠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보일러는 슬라브 옥상에 설치되어 있었다. 2010년 태풍 곤파스가 서해 중심을 직방으로 치고 올라왔다. 엄청난 바람에 조립식 판넬이 홀랑 벗겨졌다. 축열식 물탱크와 전기온수기가 알몸뚱이를 드러냈다. 설비업자를 불러 보일러실을 지상에 내려 앉혔다. 매년 잊지 않고 부식방지제를 투입한 노력이 17년을 버티게 만들었다.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주문도 단독주택은 모양새가 하나같이 똑같았다. 82년 정부에서 보조로 18평, 20평 집을 지었다. 슬라브 옥상과 창고를 덧붙인 모델이었다. 그래도 형편이 좀 나은 집은 자부담을 더해 20평으로 늘렸다. 우리집은 18평이었다. 옥상 방수와 집벽 페인트칠은 10년마다 했다. 이사 와서 다음해, 그리고 10년 뒤에 단장을 했다. 앞으로 5년 뒤에 다시 업자를 불러야겠다. 정화조는 5년에 한 번씩 수거하면 된다고 이웃들이 알려주었다. 나의 조바심은 2-3년에 한번 씩 섬 공동으로 수거할 때마다 인부들을 불렀다.

서해의 작은 섬 주문도에 터를 잡은 지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다. 시간이 갈수록 몸 놀리기를 벅차하셨다. 지난겨울 바깥출입을 전혀 못하셨다. 나아질 병이 아니었고 의지로 될 일도 아니었다. 증상완화제로 겨우겨우 버텨나갈 뿐이다. 작은형은 요양보호사 학원수강을 마치고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 나는 활자중독자답게 하루를 독서로 소일하고 있다. 당분간 이러한 삶이 지속될 것이다. 새해는 텃밭 가꾸기에 좀더 신경을 써야겠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이 퍼지기 전에 텃밭의 잡초부터 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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