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대교를 이용하는 북부권역의 중심지는 강화읍이었다. 초지대교를 건너는 길상면은 예나 지금이나 강화도 남부권역의 중심지였다. 강화읍에 인접한 선원면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상대적으로 길상면 온수리의 구시가지는 쇠약해져갔다. 그만큼 상권이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작은형과 점심을 같이 했다. 삼사년 전 어머니가 천식으로 대학병원에서 퇴원하실 때 세모자가 섬으로 들어가는 포구부근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김을 큰 박스 택배로 작은형 앞으로 주문했다. 섬은 택배운송비가 너무 비쌌다. 작은형과 〈길상작은도서관〉이 자리 잡은 공용주차장에서 만났다.
형제는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온수리 삼거리 방향으로 20m쯤 걸으면 인도에 접한 식당이 나타났다. 나의 두 번째 발걸음이었다. 출입문을 열면 폭 좁은 현관 로비가 마주했다. 살림집이었을 때 신발장을 벽에 붙였고, 식구들 수대로 신발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을 공간이었다. 큼지막하게 상호를 써 붙인 유리문을 밀면 홀이었다. 4인용 테이블이 네다섯 개 놓였다. 마주보이는 방에 앉은뱅이 4인용 테이블이 서너 개 보였다. 홀의 구석진 곳에 주방이 자리 잡았다. 분명 부엌이었을 것이다. 식당은 예전에 가정집이었다. 홀은 마루가 놓였던 자리였고, 앉은뱅이 테이블이 안방을 차지했다. 점심을 하고 작은형은 곧장 인천집으로 향했다. 나는 차 안의 복용약을 들고 다시 식당으로 향했고, 물 한 컵을 얻었다. 자신만만하게 식당주인께 물었다.
“할머니, 고향이 전라도이시죠”
“이제 나이 칠십인데 할머니는 무슨”
할머니 아닌 식당주인은 서울 말씨로 대꾸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놀랍게도,
“나는 상주에서 태어나고 학교를 다녔어요”
“문경새재 넘어 경북 상주 말씀이세요”
나는 조금 전 밥을 먹으면서 작은형과 밑반찬 가짓수를 세다말고 분명 전라도 할머니라고 확신했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경북내륙을 꼽았었다. 그동안 상주에 발길이 닿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밑반찬이 열두 가지였다. 청양고추를 썰어넣은 된장국의 알싸한 맛이 일품이었다. 생선구이가 단일메뉴였다.
나의 취향은 허름한 인테리어와 유일메뉴 식당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메뉴판의 가장 위에 적혔던 ‘소머리국밥’은 언제부터인지 가격 부분에 흰종이를 붙였다. 혼밥도 가능하지만 분주한 할머니의 손길이 미안해 머뭇거려지는 집이었다. 휴일은 일요일이었다. 가격은 만원. 최소한 두 명은 되어야 미안한 마음 없이 식당문을 밀칠 수가 있었다. 나는 공기밥을 추가했지만 주인은 제 값만 받았다. 강화도 남부권역에 발걸음을 하시는 분들은 한 번 들러보시기 바란다. 주소는 강화군 길상면 강화동로9-1(온수리)이다. 식당 상호 그대로 생선구이 맛은 일미一味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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