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온실 찾은 야생초

대빈창 2024. 11. 1. 07:30

절기는 바야흐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에서 김장을 담그는 입동立冬으로 향하고 있었다. 2024년(갑진년甲辰年)은 유사 이래 가장 더웠다는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늦봄부터 더위가 극성을 부리더니 열대야는 추석까지 이어졌다. 도시 사람들은 한가위에 무더위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등거죽을 벗길 듯한 폭염도, 어느 하루 온종일 비가 내리더니 거짓말처럼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제 정말 한반도에서 가을이 사라진 것일까.

위 이미지는 봉구산 정상의 주문도공용기지국으로 올라가는 전봇대에 부착된 계량기였다. 환삼덩굴 한줄기가 계량기 틈새로 숨어들었다. 식물도 호흡한다는 것을 플라스틱 투명 창에 서린 물방울이 증명하고 있었다. 환삼덩굴은 나의 블로그 〈daebinchang〉에 포스팅된 「선창에 토끼가 나타났다.」에 앞서 등장했다.

느리선창 가는 모퉁이집의 토끼가 우리를 탈출하여 길가에서 뜯은 풀이 환삼덩굴이었다. 토끼는 교통사고로 오른쪽 뒷다리를 절고 있었다. 환삼덩굴은 줄기가 질기고 잔가시가 많아 길손의 종아리에 긁힌 상처를 내는 억센 야생초였다. 절름발이 토끼는 억센 줄기와 잎을 씹어댔다. 환삼덩굴은 어혈을 없애고 몸 안에 있는 독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절름발이 토끼는 스스로 제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여름 끝자락에서 바로 초겨울 날씨로 접어든 것 같았다. 덩굴식물은 낙차 큰 일교차로 고뿔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을 추스르려고 자진해서 온실을 찾았을까. 90도 직각으로 붙은 옆 계량기는 환삼덩굴이 꽉차게 들어차 계량기의 디지털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궁금증이 일어 잡풀더미를 헤치고 가까이 다가갔다. 본체 뚜껑의 틈새로 덩굴 한 줄기가 뻗어 들어갔다. 식물은 스스로 따뜻한 온실을 찾아 안착했다. 야생초가 온실을 그리워하다니.

덩굴식물은 바람에 흔들릴 염려없이 햇볕이 그리운 절기에 호강하고 있었다. 온실 속의 야생초는 후손을 퍼트릴 수 있을까. 가능할 것이다. 안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갈무리할 것이다. 언제인가 전자식전력량계(단독계기)를 점검하는 사람이 뚜껑을 열면 씨앗을 밑으로 쏟아낼 것이다. 아니 야생초는 틈새로 흙냄새를 맡고 작디작은 씨앗들을 스스로 땅바닥에 떨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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