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본관 앞 도로건너 약국거리에서 잡은 D병원의 정면모습이다.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실 때마다 입원했던 대학병원은 먼저 세상을 떠난 누이가 엄마를 위해 일러준 유산이었다. 어머니가 첫 수술을 받으신지 어느덧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그 해 봄, 나는 같은 도시의 다른 병원에서 피부이식수술을 받았다. 주문도저수지 고갯길에서 자전거와 나뒹군 사고였다. 이름난 피부전문의를 찾아간 곳이 D병원이었고 통원치료를 했다.
2015년 초여름, 누워계신 어머니가 자주 눈에 띄었다. 당신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셨다. 아픈 몸을 막내가 걱정할까봐 숨겨 오신 거였다. 나는 인천지역의 대학병원에 예약을 했다. 그때 누이가 의견을 내었다. 섬에서 교통편이 좋은 서울외곽 지역의 대학병원이었다. 피부치료를 받으러 다녔던 곳이라 길눈이 훤했다. 어머니의 병명은 척추판협착증이었다.
아침 8시30분에서 오후 3시30분까지 이어진 큰 수술이었다. 회복실에서 두 시간을 보내시고 병실에 돌아오신 시간은 5시30분이었다. 어머니는 하루 온종일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공포와 고통 속에 계셨다. 병원 지하1층 의료기기점에서 알루미늄 워커, 이동식 좌변기, 사발 지팡이 구입했다. 부엌에 식탁을 설치했고, 어머니는 의자생활을 시작하셨다. 다음해 5월(2016년) 어머니는 오른쪽 고관절 수술도 받으셨다. 염려와 달리 당신은 고통을 잘 이겨내셨다. 어느해 겨울, 지독한 천식이 시골 노인네들에게 무섭게 번져갔다. 감기약으로 기침을 멈추려던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D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 다시 한 번 고비를 넘기셨다.
2022년 겨울, 어머니는 지속되는 발열에 시달렸다. 급하게 응급실을 통해 입원수속을 밟았다. MRI 진단결과 뼈와 근육에는 이상이 없었다. 피검사 결과 혈소판 감소가 나타났고, 감염내과에서 쯔쯔가무시를 의심했다. 다행스럽게 어머니는 5일 만에 퇴원하셨다. 하지만 당신은 집에 돌아오셔서 실내에서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움직일 수 있었다. 6개월 만에 같은 증상이 발생했고, 정형외과 약을 타왔지만 몸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제 어머니는 실내에서 워커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어머니의 병증을 검색하던 나의 눈에 그림 한 장이 들어왔다. 힘들게 걸음을 옮기는 노인네의 상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파킨슨병 증상이었다. 나는 신경과를 노크했다. 어머니는 늙어서 그렇다고 돈쓰지 말라고 병원 가기를 꺼려하셨다. 영상의학과의 MRI 결과는 뇌동맥류였다. 신경외과 진료는 환자 연세가 고령이어서 수술은 불가하고, 지켜보자고 했다.
핵의학과의 PCT―CT 결과 파킨슨 진단이 떨어졌다.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파킨슨병은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형성시키지 못하는 노인성 뇌질환이었다. 근육이 경직되면서 천천히 몸이 굳어갔다. 어머니는 독하다는 증상완화제의 부작용을 잘 이겨내셨다. 불안한 걸음걸이이지만 지팡이 없이 걸으실 수가 있었다. 발바닥을 끌면서 보폭을 옮기시느라 계단에 발을 올려놓는 게 쉽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몸이 서서히 악화되어 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안쓰러웠고,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를 끝까지 보살펴드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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