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2024년 갑진년甲辰年 한가위 전날 저녁 8시경 우리집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동녘 하늘이다. 검은 실루엣의 능선 위로 두텁게 흰 띠를 드리운 것처럼 구름이 덮었다. 보름달 오른편 아래 길쭉한 구조물은 봉구산 정상 주문도 공용기지국의 안테나가 매달린 철탑이다. 왼편 아래 환한 불빛은 섬에서 흔하지 않은 2층 건물 서도면사무소와 주민자치센터 보안등이었다.
추석 연휴 내내 일기예보의 날씨가 흐렸다. 추석연휴 이틀째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옥상에 올랐으나 달은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달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한가위 전날 다행스럽게 때맞추어 둥근달이 구름띠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사형제중 두 분이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주문도 살꾸지항 저녁배로 작은형네 세 식구가 섬을 찾았다. 설날과 추석 명절기간 하루 날 잡아 작은형네 가족과 밥 한끼 함께 먹는 것이 명절치레였다.
나는 작은형네 가족을 다음날 배웅했다. 파킨슨병으로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와 좁은 집에서 북적거리는 것이 번거로웠다. 어머니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내년 설날이 돌아와야 둘째아들네 식구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은형께 막걸리 두 병을 챙기라고 부탁했다. 추석날 아침, 산책에서 돌아온 나는 텃밭에 내려가 아버지와 누이가 잠들어계신 모과나무와 매실나무에 막걸리를 따라드렸다.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집 명절은 풍요롭기는커녕 쓸쓸하기가 한량없다. 제13호 태풍 버빙카BEBINCA가 중국 대륙에 상륙하면서 작은 섬은 세찬 바람에 시달렸다. 사촌형제들은 집안에 초상이 나서야 장례식장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명절이 돌아오면 큰어머니가 끓여주신 쇠고기무국맛을 잊지 못했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이지만 차례음식을 빠트리지 않으셨다. 어린 나는 뒷동산에 올라 솔잎을 따와 송편 찌는 시루에 깔았다. 주전자 뚜껑으로 어머니가 홍두깨로 민 만두피를 둥글게 오려냈다.
나는 붓펜으로 쓴 지방을 진설한 차례음식상 위에 붙였다. 장남이신 아버지가 밥과 국, 그리고 술을 따르고, 가운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그리고 사촌들은 조상들께 절을 올렸다. 차례를 지내고 십여 명이 넘는 사촌형제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성묘를 갔다. 아버지는 무덤의 잡풀을 손으로 뜯어냈다. 조상께 술잔을 올리며 고수레를 하고 음복을 했다. 이제 다 옛 이야기가 되었다. 대빈창 해변에 텐트가 가득했다. 도시인들은 명절연휴에 놀러가 차례를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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