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절대적 토건국가다. 전체 국민 1인당 GDP의 20%를 차지하여, 선진국의 2배에 달하는 비중을 자랑(?)한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대를 경제적으로 규정하는 용어로 '개발독재' 시대라고 한다. 이 독소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각인되어 사회적 암으로 작동하고 있다. 개발주의는 무조건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무분별한 개발을 절대선으로 여겼다. 개발국가란 '국가가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개발의 주체’였다.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더 많은 성장의 도구로 여기는 파괴적 개발의 주체로 구실하는 국가였다. 한국은 개발국가 중에서도 가장 타락한 토건국가였다.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하여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국가'로서 국토파괴는 그 맹목성과 폭력성, 반민주성은 가히 상대를 찾을 수가 없다.(사회학자 홍성태의 〈대한민국은 공사중, '토건국가'의 개혁을 위해〉에서 발췌)
온 국토를 파헤치고 뒤엎고 짓밟고 막고 터뜨리고 찢어발기는 행위가 개발이고, 발전이고, 번영으로 추앙받았다. 수많은 골프장 건설, 새만금 방조제 완공, 4대강 콘크리트 수로화…… 조국의 빛나는 발전에 고무된 방방곡곡의 사람들이 떼거지로 국토 지도(!)를 바꾼 대역사의 현장에 몰려들었다. 토건족의 천국, 이 땅에서 가장 약한 자는 터무니없는 린치에 신음하는 국토와 멸종되고 있는 동물들이었다.
대빈창 해변 해넘이는 밤새 지속되었다가 날이 밝아오면 막을 내렸다.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일몰일 것이다. 북극에 가까운 스칸디나비아 3국의 일몰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토건공화국의 힘이었다. 섬 이곳저곳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한가롭고 평화로운 섬, 강화도의 부속도서 주문도에 연일 포클레인의 굉음이 울려퍼졌다. 수도권의 인구소멸 예상 기초단체의 부속도서는 초고령화 지역이었다. 대빈창해변 캠핑장에 새로운 조명시설이 벚나무 사이마다 들어섰다. 어둠이 내리면 붉은 색에서 파란 색을 거쳐 초록색으로 바뀌는 9개의 플라스틱 기둥이었다. 밤새 조명 기둥의 불빛이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몇 년 전부터 대빈창해변 일몰의 아름다움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캠핑장에 들어선 플라스틱 9개의 기둥은 일몰을 가리켰다. 어둠이 다가오면 인공적인 일몰을 구경하라는 의도인가. 두 군데 둥그런 경계석 안에 각각 토끼, 자라, 오리 모형물 그리고 판석 플라스틱이 4 ·5개가 깔렸다. 대빈창해변 바다 물속에 용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라가 토끼를 업고 밤새 다녀와 여명이 밝아오면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일까.
그 많던 대빈창 길냥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은 추운 계절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길냥이들은 스러지지 않는 일몰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덩달아 고라니도 해변에 나타나지 않았다. 녀석들은 해변을 포기하고 더 깊은 봉구산 숲속으로 피신했을까. 도대체 겨울잠을 자야 할 나무들은 무슨 생고생이란 말인가. 그냥 내버려달라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 했다. 토건공화국의 삽날에서 서해의 작은 섬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인간과 야생이 안전하게 더불어 사는 길은 없을까. 토건공화국에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빛 공해에 놀란 길냥이들은 찬바람 부는 계절 어디로 숨어 들었을까. 고라니는 나무뒤에서 겁먹은 눈길로 조명불빛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조국은 오늘도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단전 ·단수로 고통 받는 이웃들이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토건공화국의 미학은 아무도 찾는이 없는 추운 계절, 작은 외딴섬 해변에 밤새 조명을 밝혔다. 우리시대의 미학은 치졸하고 천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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