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는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그는 “작가는 쓰여 진 말을 가지고만 행동해야 한다”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수식어를 원치 않았다.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자로 ‘영예’보다 ‘신념’을 택했다.
사르트르의 1938년 출간된 장편소설 『구토』는 일기체 형식의 작품으로 그의 철학적 사유와 체험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20세기 사상과 문화에서 가장 중요했던 실존주의를 세상에 선언한 소설이었다. 나는 아직 소설을 읽지 못했다. 철학자의 글을 단편적으로 접했을 뿐이다. 위 이미지를 접하며 철학자의 소설을 떠올렸다.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기러기들에게 먹을 것이 귀한 시기였다. 작년 벼베기 철에 주문도 대빈창 들녘을 찾은 기러기들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녀석들은 다랑구지의 알곡을 알뜰하게 주워 먹었다. 먹을 것이 궁해지자 봉구산자락 마른 고춧대에 매달린 시든 고추를 탐했다. 그것마저 떨어지자 녀석들은 잡풀의 씨앗을 먹을거리로 삼았다. 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떠나기 시작했다. 기운이 떨어진 녀석들은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못하고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속이 허해 추위에 떠는기러기들이 안쓰러웠다. 이제 대빈창 다랑구지의 기러기 가족은 두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녀석들은 벼 그루터기의 뿌리를 뽑아 씹어댔다. 기러기들의 보릿고개였다.
저녁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빈창 해변에서 봉구산으로 향하는 옛길로 접어들었다. 봉구산 능선이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골짜기가 연못골이다. 작은 둠벙과 계단식 논으로 개간되었다. 오솔길가의 논 한 필지가 묵정논이 된 지 20여년이 되었다. 맹꽁이 아지트가 된 묵정논의 습지 천이과정은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작은 숲을 가로지르는 오솔길로 접어들었을 때 기러기 한 마리가 맞은편에서 뒤뚱거리며 걸어오다 나와 마주쳤다. 당연히 녀석이 날개짓을 하며 허공으로 날아오를 줄 알았다. 엉뚱하게 녀석은 길 한켠으로 비켜서서 목을 길게 빼고 무엇인가 토해내려고 했다. 허기가 진 기러기가 알 수 없는 무엇을 집어삼킨 모양이다. 녀석은 목안에 걸린 것을 토해내려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나는 녀석이 놀라지 않게 반대쪽 길가로 멀찍이 떨어져 지나쳤다.
배고프고 아픈 녀석에게 조금의 불편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기러기를 붙잡아 한국조류협회에 도움을 청해야하지 않을까. 나는 걸음을 되돌렸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녀석은 길가에서 목을 빼고 헛구역질만 했다. 손전화로 불편한 녀석의 이미지를 잡았다. 손을 뻗치자 기러기가 퍼드득 날개를 펼쳤다.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라 목구멍에 걸린 이물질을 뱉어낸 것인지 모르겠다. 녀석은 고맙다는 인사도 않고 황급히 연못골 둠벙쪽으로 낮게 날아갔다. 천만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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