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10

2024년 갑진년甲辰年 한가위

이미지는 2024년 갑진년甲辰年 한가위 전날 저녁 8시경 우리집 슬라브 옥상에서 잡은 동녘 하늘이다. 검은 실루엣의 능선 위로 두텁게 흰 띠를 드리운 것처럼 구름이 덮었다. 보름달 오른편 아래 길쭉한 구조물은 봉구산 정상 주문도 공용기지국의 안테나가 매달린 철탑이다. 왼편 아래 환한 불빛은 섬에서 흔하지 않은 2층 건물 서도면사무소와 주민자치센터 보안등이었다.추석 연휴 내내 일기예보의 날씨가 흐렸다. 추석연휴 이틀째 저녁 산책에서 돌아와 옥상에 올랐으나 달은 구름 속으로 숨어버렸다. 달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한가위 전날 다행스럽게 때맞추어 둥근달이 구름띠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사형제중 두 분이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주문도 살꾸지항 저녁배로 작은형네 세 식구가 섬을 찾았다. 설날과 추석 명..

무임승차無賃乘車

어디서 또 소를 잃어버렸을까. 안전사고 예방조치가 강화되었다. 그동안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한 시간이 채 못 미치는 객선 운항내내 차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배 직원들이 차량마다 철저하게 점검하며 승선객들을 2층 객실로  올려 보냈다. 객실은 냉방기의 찬바람으로 얼어있었다. 구석자리를 찾아 몸을 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몸이 먼저 알았다. 일어서면서 객실창을 내다보니 저 멀리 화도 선수항이 보였다. 그때 램프 끝머리의 괭이갈매기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여객선 램프는 육상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승하차시 발이 끼거나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요했다. 나는 그동안 턱주가리로 명명했었다. 녀석들이 오늘의 삼보6호 무임승차無賃乘車 주인공이었다. 괭이갈매기는 이름그대로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모녀..

처서ㆍ백중사리ㆍ태풍 종다리

8월 22일은 풀의 성장이 멈춘다는, 모기 주둥이가 구부러진다는 처서處暑였다. 주문도 느리항 7:00 출항 삼보12호 1항차를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매표소와 마트앞 도로 정차구역에 물이 가득했다. 감이 왔다. 분명 바닷물이었다. 팔각정 뒤 물량장을 돌아 짠물을 피해 선착장으로 진입했다. 상황을 모르고 직진하려는 외지 차량을 손짓으로 우회시켰다. 2024년(갑진년甲辰年)에 년중 물이 가장 민다는 백중사리 열물이었다. 주문도의 최대 만조는 아침 6시58분으로 948이었고, 최대 간조는 자정을 지나 1시11분으로 -1이었다. 하루 동안의 조수 간만의 차이가 9미터를 넘겼다. 서도西島 군도群島 바다의 저수심으로 삼보 12호는 23-25일까지 2항차나 3항차가 결항이었다. 선착장을 넘어오는 바닷물에 해안도로가..

물결따라 흘러 온 덕적도

〚 옹진군, 자ㆍ연ㆍ품ㆍ은 옹진자연 〛 띠지의 글씨다. 스티로폼 박스 뚜껑이 세찬 바닷바람에 날려 제방 축대를 날아올라 해송 숲 솔가리에 얹혔다. 매직으로 쓴 글자는, ― 덕적 으름실 박찬기 ― 스티로폼 박스의 주인은 덕적도 박찬기 어부일 것이다. 나는 ‘으름실’을 자연부락 이름으로 유추했다. 으름덩굴이 우거진 골짜기가 바다로 이어진 어촌마을이었을까. 아니면 어선 이름이 ‘으름실’일지도 모르겠다. 조업 중이던 배에서 스티로폼 박스가 바다로 떨어졌다. 그날 유달리 파도가 높았을 것이다. 물결에 떠밀리다가 박스와 뚜껑은 분리되었다. 뚜껑은 물결 따라 흐르다 주문도 대빈창 해변에 닿았고, 저녁 산책나선 나의 눈길에 띄었다.스티로폼 박스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꽃게, 밴댕이, 병어··· 아니면 복다림으로 이름 높..

삼암돈대에서 바다를 보다.

사람 관계에 부딪힐 때마다 혼자 찾아가 바다를 보며 마음을 다독이던 곳이었다. 강화도 해안을 빙 둘러싼 53개의 돈대墩臺에서 가장 접근성이 용이했다. 삼암三岩 돈대는 외포 항에서 황청포구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999년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삼암 돈대는 미루지 돈대와 함께 원형原形에 가장 가까운 돈대라고 한다.돈대에 고인 물을 빼는 배수장치 석누조石漏槽가 석벽에 따로 설치되었다. 여자도 쉽게 담을 넘을 수 있다는 뜻의, 낮게 쌓은 담장 여장女牆도 부분적으로 살아있었다. 석축 상판의 무리지은 개망초가 며칠 동안 퍼부은 빗줄기로 낯이 말갛게 씻겨있었다. 지난주 하루밤새 300mm의 폭우가 쏟아져 돈대 바닥 한 구석이 꺼졌다. 러버콘rubber cone이라 불..

푸른 황해黃海

따개비는 조간대潮間帶에 사는 바다생물이다. 조간대는 해안에서 해수면이 가장 높아졌을 때(만조선)와 해수면이 가장 낮아졌을 때(간조선) 사이의 지형을 가리켰다. 밀물이면 물속에 잠기고 썰물에 대기 중에 드러나는 하루 4번 물 흐름에 맡기는 생활사였다. 따개비의 몸길이는 10-15㎜로 석회질의 딱딱한 껍데기로 덮였다. 입을 움직여 물속의 플랑크톤을 잡아먹었다. 여섯 번 탈피한 후에 시프리스 유생이 되어 바위에 정착하여 따개비가 되었다.조금 물때의 황해黃海는 동해처럼 파랗다. 들고 나는 물높이가 크게 차이가 없고, 물살이 느리기 때문이다. 반면 사리 때의 빠른 물살은 밑바닥의 개흙을 퍼올려 물색이 탁했다. 사람들은 흔히 사리때의 물색으로 서해를 떠올렸다.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은 따개비로 두 번 째였다. 「세든..

장곶돈대에서 바다를 보다.

읍에서 일을 보고 배시간이 얼마나 남았던 간에 나는 화도 선수항으로 차를 몰았다. 포구를 지나쳐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바지 나무그늘에 차를 세웠다. 좌석을 뒤로 젖히고, 책을 펼치다 무료해지면 눈을 감았다. 바다로 향하는 언덕끝머리에 장곶長串 돈대墩臺가 있었다. 걸어서 1-2분 거리였지만 나는 그동안 등한시했었다. 돈대에 바짝 붙은 군부대를 오가는 차량이 가끔 흙먼지를 날릴 뿐이었다. 혼자 고적한 기운에 잠기는 것이 좋았다.장곶돈대는 거의 원형에 가까웠다. 까막눈이 보아도 돈대는 천연의 요새였다. 바다를 향해 길쭉이 내민 언덕 끝에 돈대가 자리잡았다. 바다를 향해 뻗은 오른쪽 산줄기는 관음도량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의 어류정 포구였다. 왼쪽 바다 아스라이 내가 살고 있는 주문도가 보였다. 외떨..

북일곶돈대에서 바다를 보다.

서울 근교 대학병원에 들렀다가 선창에 도착했다. 대리처방으로 어머니 파킨슨 약을 받아오는 길이었다. 섬은 주유소가 없었다. 동막해수욕장 가는 고갯길 정상의 주유소가 떠올랐다. 셀프 주유를 하고 다시 배터로 돌아오는 길, 돈대 이정표가 눈에 뜨였다. 시간은 넉넉했다. 바다가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제방이 나타났다. 〈강화나들길〉 분기점이었다. 왼쪽으로 산을 오르면 20코스였고, 오른쪽 제방을 따라가면 7코스로 가는 길이었다.배수갑문 옆 좁은 공터에 차를 주차했다. 북일곶北一串 돈대墩臺 600m라는 말뚝이 서있다. 시작부터 난코스였다. 코앞의 폐타이어 계단을 밧줄에 매달려 올랐다. 급경사를 오르자, 화살표가 그려진 1.07㎞라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직선거리는 600m, 산길은 1.07..

산책 B코스

나의 단순소박한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는 식후 하루 세 번 산책이다. 아침․점심․저녁 날이 궂지 않으면 헌운동화를 발에 꿰찼다. 봉구산자락 옛길을 따라 출렁이다가 대빈창 들녘 들길을 따르다가 해변 솔숲을 지나 제방을 걸었다. 절벽 중간에 전망대가 서있는 바위벼랑이 반환점이다. 산책을 나서면 스물에 열아홉 발걸음이 옮겨지는 코스다. 이를테면 A코스다 나의 산책코스에서 숨겨진 B코스가 오늘의 이야기다. 섬 날씨는 바람이 세차다. 과장해서 몸이 크게 흔들리면 나는 B코스로 접어든다. 우리집 뒤울안 언덕을 시작으로 대빈창 해변 솔숲 산책코스는 빗살무늬토기 기형을 따라가는 형국이다. 뾰족한 토기 바닥의 작은 숲은 사거리다. 우측으로 꺾으면 해변으로 향하는 들길이고 직진하면 연못골 계단식 논이 나타났다. 좌측으..

고라니는 쓸개가 없다 - 5

위 이미지는 보름 전 저녁산책에서 만난 고라니이다. 곧게 뻗은 대빈창 해변 제방에 들어서 반환점 바위벼랑을 향해 걸었다. 고라니 한 마리가 나를 등진 채 제방과 산사면 사이 공터의 풀을 뜯으며 천천히 앞서 걸었다. 다행스럽게 귀가 어두운 녀석인지 눈치 채지 못했다. 바위벼랑 전망대를 오르는 나무계단이 보였다. 앞이 막히고, 그때서야 고라니는 뒤를 돌아보았다. 서향을 바라보는 해변의 일몰 한 시간 전 햇살은 강렬했다.녀석은 눈이 부신 지 잠깐 멈칫했다. 『고라니는 쓸개가 없다』 다섯 번째 이미지를 얻었다. 고라니는 예의 날렵한 뜀박질로 아까시 숲으로 사라졌다. 서해의 작은 외딴섬마다 고라니 천국이다. 섬 농부들은 작물의 어린 순을 탐하는 녀석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였다. 고라니들은 언제부터 섬에 자리를 잡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