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08

낮달과 고라니

해 뜨는 시각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어느덧 동짓달 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봉구산 산행길은 건너 뜀없이 다행스럽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졸린 눈을 부비며 억지로 아침밥을 우겨넣고, 낡은 등산화을 꿰고 산길로 들어섭니다. 푸른 새벽이 점차 엷어지면서 찬 기운속으로 여명이 밝아 옵니다. 산정에 다다른 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다로 눈길을 돌립니다. 어이없게 서녘 하늘에 황달걸린 해가 누런 쟁반처럼 허공에 걸려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당황했습니다. 낮달이었습니다. 봉구산 자락의 섬마을 느리는 바다를 앞마당으로 터를 잡아 어쩔수없이 북향입니다. 그러니깐 해가 산을 넘어와야 마을의 아침이 밝아 옵니다. 산정에서 바라본 동녘의 아침해는 붉은 기운만 얼비추는데, 서녘의 낮달이 아침해처럼 허공..

양서류의 적색경보

요 며칠 때 이른 추위가 찾아 왔습니다. 녀석이 보이질 않습니다. 일찍 들이닥친 추위에 녀석의 생체시계가 천천히 맥박을 정지시켜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년의 따듯한 봄을 그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을까요. 밤마다 찾아오던 녀석이 보이지 않은지가 벌써 한달이 지났습니다. 유리창에 반사된 스탠드 불빛과 제가 읽고 있던 책의 정중앙에 희끄무레하게 녀석의 모습이 보입니다. 창문 밖에 덧친 방충망에 녀석이 배를 깔고 사냥에 여념이 없습니다. 불빛을 보고 달겨든 날벌레들이 녀석의 저녁 만찬입니다. 한결같이 제 시간에 출근하던 녀석이라 가끔 눈에 뜨이지 않으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 언젠가 녀석들의 겨울잠을 엿본 적이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모형처럼 빳빳하게 굳어 생명체로 보이질 않았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면서 자..

땅콩, 어망(魚網)에 담기다

가난한 살림살이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드러낸 것 같습니다. 원래 오늘 글의 제목은 '식물도 잠을 잔다' 였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수확 전에 찍은 땅콩밭의 모습이었습니다. 말이 우습기도 하지만 식물 중에는 '수면'운동을 취하는 종이 몇 가지 있습니다. 밭가에 흔히 자라는 괭이밥, 정원수로 인기있는 자귀나무 그리고 땅콩이 대표적입니다. 날이 흐리거나 밤중에 잎을 오므리는 특성을 가진 식물들입니다. 그런데 한두달 전 임시저장한 사진이 귀신의 소행인 지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나의 미숙한 손놀림이 분명 엉뚱한 자판을 건드려 사라진 것 입니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이는 법인가요. 아니면 꿩대신 닭인가요. 아쉬움이 큽니다. 어머니 방에 불을 들이는 아궁이가 놓인 간이창고에 걸린 땅콩 자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희..

대빈창을 아시는가

대빈창 해변의 파란 하늘과 흩어지는 흰구름에서 가을이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섬이 서도면의 9개 무인도 가운데 하나인 분지도 입니다. 서도면에는 4개의 유인도가 있습니다. 면소재지가 있는 주문도는 임경업 장군의 일화에서 섬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중국 사신으로 가던 임경업 장군이 하직인사를 올린 섬이라 아뢸 주(奏), 글월 문(文)을 써서 주문도로 했답니다. 요즘은 주문도(注文島)로 바뀌었습니다. 주문도의 피서객은 거의 대빈창 해변에 몰립니다. 조선시대 중국을 비롯한 외국 사신을 영접했던 곳입니다. 사진의 도로에서 제방이 좌우로 각 500m씩 뻗어 해변은 1km가 되는 셈입니다. 제방 안쪽의 해송숲이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을 막아 줍니다. 한뼘의 농경지라도 넓히려는 욕심..

감나무 벗어 제끼다

저 먼 아랫녘을 지나는 태풍 말로의 입김이 여기 강화도까지 미칩니다. 바람이 전깃줄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집 뒷편 봉구산의 바람소리는 쉬지않고 휘이잉 ~ ~ 겨울 삭풍처럼 울어대고, 창밖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은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휙 휙 날카로운 소리를 규칙적으로 내 지릅니다. 남해바다를 휭으로 통과하여 대한해협을 빠져 나가는 태풍의 영향이 이 정도입니다. 태풍을 직접 겪는 남도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강화도는 곤파스에 크게 당해 그 아픔을 미리 겪었습니다. 수확을 앞둔 들녁은 찬란한 황금빛에서 처참한 침울로 무겁게 내려 앉았습니다. 반수가 도복이 되었습니다. 벼농사는 쓰러지면 반나마 건지면 다행입니다. 농민들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 들어갔습니다. 객쩍은 소리를 하다가..

북새 뜬 필름 한 컷

먼동이 터오고, 북새가 떴습니다. 절기는 더위가 가시고 선선해진다는 처서(處暑)를 향해 갑니다. 신년 해맞이를 집뒤 봉구산 정상에서 맞았습니다. 그때 태양은 화도 선두리에서 떠올랐습니다. 하늘에 있는 태양길을 따라 해가 떠오르는 지점이 절기마다 달랐습니다. 잠의 검은 바다에 난데없이 날카로운 이물질이 끼어 들었습니다. 컹! 고요한 밤의 적막을 찢는 최초의 소리였습니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픕니다. 아! 어제도 술이 지나쳤습니다. 첫 울부짖음이 무슨 신호이듯 온 동네 개들의 돌림짖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놈들은 경쟁이나 하듯 서로 짖어댔습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 갑니다. 입안에 물기 한점 남아있지 않습니다. 냉장고를 뒤져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이부자리에 누워 어제 술자리를 떠 올렸습니다. 필름은 ..

봉구산을 오르다

가급적 저는 아침에 봉구산을 오릅니다. 낮이 무더웠거나, 밤기운이 갑자기 내려간 다음날 어스름이 거치기 시작하는 무렵 산을 오르면 그림처럼 안개가 산정에서 거슬러 내려 옵니다. 참으로 몽환적인 풍경입니다. 서도면은 4개의 유인도와 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강화도의 막내 행정구역입니다. 면소재지 주문도 중앙에 자리잡은 봉구산은 해발 146m입니다. 쉽게 연상하자면 제주도가 한라산과 그 능선으로 이루어진 섬처럼 주문도와 봉구산의 관계가 그와 같습니다. 걸어서 3시간이면 일주가 끝날 정도로 작은 섬입니다. 주민수는 300여명. 섬이라 일반인들은 어민과 바다고기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주업은 농업입니다. 논이 25만여평 됩니다. 그리고 산자락의 밭이랑을 일궈 주민들은 생계를 꾸려 갑니다. 저의 집뒤가 바로 등산로 ..

바다 건너 어머니 섬

내 방 컴퓨터 책상에 앉아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찍은 전경 그림입니다. 작은 섬 주문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집이라고 저는 스스로 자랑합니다. 월파벽 앞까지 바닷물이 밀려 왔습니다. 만조입니다. 바다건너 섬이 바로 석모도입니다.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의 하나인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길게 늘어선 흰구름에 살짝 가린 가장 높은 봉우리가 상봉산입니다. 행정구역명 삼산면은 석모도의 3대 명산인 해명산, 상봉산, 상주산에서 유래합니다. 오른편으로 내려서는 능선을 따라 작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보문사가 앉은 낙가산입니다. 중턱 눈썹바위 절벽에 관음보살좌상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저는 바다에서 관음보살을 우러러보고 있는 위치입니다. 2008년 11월. 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강화군의 막내 서도면의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