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감나무 벗어 제끼다

대빈창 2010. 9. 13. 05:25

 

저 먼 아랫녘을 지나는 태풍 말로의 입김이 여기 강화도까지 미칩니다. 바람이 전깃줄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집 뒷편 봉구산의 바람소리는 쉬지않고 휘이잉 ~ ~ 겨울 삭풍처럼 울어대고, 창밖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은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휙 휙 날카로운 소리를 규칙적으로 내 지릅니다. 남해바다를 휭으로 통과하여 대한해협을 빠져 나가는 태풍의 영향이 이 정도입니다. 태풍을 직접 겪는 남도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강화도는 곤파스에 크게 당해 그 아픔을 미리 겪었습니다. 수확을 앞둔 들녁은 찬란한 황금빛에서 처참한 침울로 무겁게 내려 앉았습니다. 반수가 도복이 되었습니다. 벼농사는 쓰러지면 반나마 건지면 다행입니다. 농민들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 들어갔습니다. 객쩍은 소리를 하다가는 뺨이 날아올 것 입니다. 다들 입이 무거워졌습니다. 사진의 나무는 제가 출퇴근하면서 하루에 최소한 두번은 만나는 오솔길의 감나무입니다. 저는 포장도로보다 샛길을 애용합니다. 수령은 대략 50여년 정도로 제법 세월먹은 나무답게 밑둥치는 짙은 이끼가 덮었습니다. 9월 초 찍은 사진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잎을 떨궐 정도면 매달린 감은 홍시입니다. 그런데 잘디 잔 땡감입니다. 짙푸른 녹음으로 감 열매가 보이질 않아야 정상입니다. 무슨 일인지 감나무가 웃통을 벗어 제꼈습니다. 때아닌 감나무의 누드 시위는 송충이와 곤파스의 폭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올해는 유달리 송충이가 극성입니다. 고온다습한 기후가 벌레들의 천국을 만들었습니다. 벌레들의 알 군집이 그물처럼 나무 전체를 뒤덮었습니다. 알이 애벌레로 부화되자 모든 엽록소가 공격대상 입니다. 깨, 콩, 고추, 배추, 무 등 눈에 뜨이는 모든 녹색은 사각사각 소리를 냈습니다. 심지어 집안으로 몰려든 송충이를 아침마다 한바가지씩  쓸어 내야만 했습니다. 가공할 벌레의 습격입니다. 벌레에 뜯긴 생채기 잎에 곤파스의 사나운 바람이 밤새 몰아 쳤습니다. 빗방울을 거느린 세찬 바람에 상처뿐인 잎사귀는 항복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감나무는 처절한 패배를 시인하며 웃통을 벗고 항복을 한 것 입니다. 벌거벗은 감나무를 보며 어르신네들은 '과실나무 잎은 달아서 벌레들이 더욱 극성이야.' 하십니다. 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 과수는 그 잎사귀도 단맛이 나는 모양입니다. 감나무 주위에 바람에 떨어진 땡감이 지천입니다. 에너지 생산공장인 잎을 모두 떨권 감나무는 에너지 저장창고인 열매가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중력의 법칙에 의해 땡감들은 낙하를 시작할 것입니다. 때이른 감나무의 헐벗음에서 저는 인간이라는 종의 머지않은 미래를 봅니다. 인류의 턱없는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이 지구의 기후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았습니다. 근원적인 대책없이 자신의 발등만 찍는 헛똑똑이 인류의 미래는 절망적입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인한 아수라지옥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헐벗은 감나무가 선지자처럼 예견하고 있습니다. 오일피크는 길어봤자 20여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체에너지 개발은 불가능합니다.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하나뿐인 지구가 현세대의 무책임한 화석연료 남용으로 돌이킬 수없이 병들었습니다. 암담합니다. 인류의 흥청망청 자원 낭비는 갈데까지 간 금치산자들의 자기파멸 입니다. 극심한 자원부족으로 고통받는 미래의 후손들이 현세대인 우리의 무책임함을 무섭게 질타하는 환영이 보입니다.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못난 세대로 우리는 기록될 것 입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땅콩, 어망(魚網)에 담기다  (0) 2010.10.18
대빈창을 아시는가  (0) 2010.10.11
북새 뜬 필름 한 컷  (0) 2010.08.30
봉구산을 오르다  (0) 2010.08.10
바다 건너 어머니 섬  (0) 2010.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