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북새 뜬 필름 한 컷

대빈창 2010. 8. 30. 06:04

 

 

먼동이 터오고, 북새가 떴습니다. 절기는 더위가 가시고 선선해진다는 처서(處暑)를 향해 갑니다. 신년 해맞이를 집뒤 봉구산 정상에서 맞았습니다. 그때 태양은 화도 선두리에서 떠올랐습니다. 하늘에 있는 태양길을 따라 해가 떠오르는 지점이 절기마다 달랐습니다. 잠의 검은 바다에 난데없이 날카로운 이물질이 끼어 들었습니다. 컹! 고요한 밤의 적막을 찢는 최초의 소리였습니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픕니다. 아! 어제도 술이 지나쳤습니다. 첫 울부짖음이 무슨 신호이듯 온 동네 개들의 돌림짖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놈들은 경쟁이나 하듯 서로 짖어댔습니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 갑니다. 입안에 물기 한점 남아있지 않습니다. 냉장고를 뒤져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이부자리에 누워 어제 술자리를 떠 올렸습니다. 필름은 끊어졌습니다. 아무리 뒤척여도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기억 재생을 포기하고 잠을 청하는 귓전으로 적의에 찬 개들의 날카로운 울부짖음이 들렸습니다. 뇌세포에 균열이 가는 듯한 통증은 개들에 대한 적개와 분노로 솟구쳤습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두시를 향했습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시나브로 개들의 울부짖음이 잦아 들었습니다. 송곳처럼 날카로워진 신경줄도 느슨해집니다. 상황은 다시 배반합니다. 수닭들의 울음이 이어졌습니다. 놈들은 서로 목청을 자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집집마다 닭장에 군림하는 수닭이, 거느린 암컷들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홰를 쳐댔습니다. 왜 개들은 가만히 있을까요. 알다가도 모를 일 입니다. 녀석들이 외딴 섬의 적막을 돌아가며 깨뜨리기로 모종의 합의을 본 것 같았습니다. 어느결에 바톤은 매미에게 옮겨 갔습니다. 앞산 전체를 들어내는 듯한 놈들의 기세가 두렵기조차 합니다. 여름 한낮 자장가처럼 귀를 간지럽히던 참매미 울음이 그리워집니다. 말매미의 함석을 긁어대는 듯한 금속성 소음은 차라리 공포였습니다.

매미의 울음이 불안을 증폭시킵니다. 간신히 마지막 술자리를 기억해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바다건너 석모도 능선의 실루엣이 점차 푸른빛으로 잦아 들었습니다. 교회 새벽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아쉽게 손에 넣지못한 책 한권이 떠올랐습니다. 『몰락의 에티카』 즉 '몰락의 윤리'를 말하는 것일까요. 세상을 향한 문학의 표정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상의 몰락'은 '윤리의 몰락'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상을 향한 의지가 약해지며 긴장이 느슨해지고, 그 틈을 알코올의 허무가 스며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자주 필름이 끊어지는 것은 '알콜성 치매'라고. 술이 덜깬 멍청한 생각은 우선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각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잃어버렸던 필름 토막은 개의 울부짖음에, 수닭의 홰치는 소리에, 매미들의 금속성 합창에, 깨진 쇳조각 두드리는 듯한 새벽기도 종소리에 묻혀 있을었까요? 동녘 하늘을 불태우는 북새를 보며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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