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410

겨울 감나무는 텃새들의 식량창고다

늙은 감나무가 모든 잎을 떨구고, 까치밥만 잔뜩 매달았습니다. 봉구지산 자락에서 최대한 줌인으로 잡은 이미지입니다. 서도교회가 감나무를 배경으로 바싹 다가섰습니다. 작년 겨울은 20년 만에 주문도 앞바다에 얼음이 날 정도로 추웠습니다. 감나무는 추위에 약한 과수 중의 하나입니다. 봉구지산을 등지고 바다를 앞마당으로 삼은 느리 마을 중앙에 자리 잡은 감나무는 수령이 50살 정도 되었습니다. 쌓인 연륜만큼이나 슬기롭게 추위를 이겨내고 가지가 부러져라 홍시를 잔뜩 매달았습니다. 추위를 이기지 못한 감나무는 겨울을 나면 고욤나무로 변합니다. 우스개 소리가 아닙니다. 개량종 감나무는 고욤나무 대목으로 접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접을 붙인 감이 달리는 줄기가 동해로 얼어 죽으면, 추위에 강한 고욤나무 대목에서 새로운..

찬바람을 이긴 푸른 새싹은?

밭을 둘러 싼 낮은 능선의 침엽수 잎색은 탁합니다. 키작은 관목 활엽수림은 벌써 잎사귀를 떨구었습니다. 밭둑의 잡풀은 억센 대궁만 찬 바람에 몸을 흔듭니다. 성큼 초겨울이 다가왔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바람이 땅바닥을 할퀴고 있습니다. 시절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밭 가득 푸른 새싹이 눈을 시원하게 만듭니다. 녀석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먼저 고인이 된 왕회장이 떠오릅니다. 막장까지 간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 세상은 고통의 신음소리로 가득합니다. 이 땅 산업화·근대화를 이끈 전설답게 요즘 그가 미디어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 대 99, 양극화의 심화, FTA 등등. 가난하여 약한 자들이여 힘들다고 아우성치지 말고, 어떤 역경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초인적인 의지와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세계 10대 경..

서도면에는 서도가 없다

주문도의 봉구지산 정상에서 부감한 서도(西島) 군도(群島) 입니다. 황금 들녘은 대빈창 벌판입니다. 요즘 보기 힘든 다랑구지 논들 입니다. 제방너머 물이 빠지면서 갯벌이 드러났습니다. 가까운 섬이 아차도이고, 왼켠 상단의 섬이 볼음도입니다. 서도면은 면을 구성하는 4개의 유인도가 서해상에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4개의 섬은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 말도이고, 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강화군 행정단위의 막내라 할 수 있습니다. 외포리 항에서 객선으로 1시간 40여분 정도가 소요되는 바닷길은 먼저 볼음도를 들르고, 아차도를 거쳐 주문도에 닿게 됩니다. 이 서해상의 외딴 섬들은 피서 성수기가 다가오면 적막하기까지 한 고요를 깨고 한껏 기지개를 켭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도시 생활의 부산함을 털어내..

가마우지가 등대에 앉았다

가마우지는 사다새목(目) 가마우지과(科)에 속하는 26 ~ 30여종(種)의 물새류를 말합니다. 가마우지 14마리가 등대 위에 날개짓을 접었습니다. 서해안에 사는 가마우지는 75 ~ 85㎝로 제법 덩치가 큰 축에 듭니다. 가마우지 하면 우선 낚시가 연상 됩니다. 가마우지 목 아래에 실을 묶어, 물속에서 물고기 사냥에 성공한 가마우지가 삼키지 못하게 하고 토하게 해서 잡는 어업법입니다. 중국 계림(桂林)의 절경과 어우러진 가마우지를 이용한 낚시법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 기후 지방에도 가마우지를 이용한 은어 낚시법이 현재에 전해지지만 관광 상품으로 더욱 알려져 있습니다. 극동 3국중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가마우지를 이용한 낚시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학자에 따라서 이 땅에서 선사시..

한옥 예배당을 아시나요

여객선이 서도 군도(群島)에 접어들었는지 하선 안내 방송이 들려옵니다. 볼음도는 은행나무를, 주문도는 서도중앙교회를, 상징으로 내세웁니다. 서도중앙교회는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내판에 의하면 교회는 1923년 주민들이 헌금을 모아 지었고, 1978년에 진촌교회에서 서도중앙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교회 역사가 90여년이 되었습니다. 사진의 현판에 ‘鎭村敎會’가 뚜렷합니다. 교회가 자리 잡은 자연부락명이 ‘진말’입니다. 건물은 전통적인 조선 한옥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입니다. 제가 보기에 1층은 본당이고, 2층은 옛 종루로 보입니다. 유리창에 스테인드글라스로 보이는 문양이 그려졌습니다. 본당인 예배당 내부는 두줄로 된 기둥으로 나뉘어진 어칸과 양쪽 협칸으로..

당신의 고향은 안녕하신가요?

추석연휴가 지난 며칠 뒤 저는 참으로 오랜만에 김포 통진의 옛집을 찾았습니다. 옛집에서 주문도로 이사 온 지가 만 3년이 다 되었습니다. 왼편 2층 건물이 마을회관입니다. 평소와 다르게 회관은 적요했습니다. 농한기의 짬으로 어르신네들이 재미삼아 두드리던 고스톱이나 마작으로 밤낮없이 시끌벅적했던 곳입니다. 오른편 모퉁이가 보이는 처마 낮은 파란 슬레이트 지붕은 돼지우리입니다. 용케 ‘덕화공영’이라는 글자가 햇빛에 바랜 가빠가 걸쳐 있습니다. 10여년도 넘는 저 세월 건너 어느 날이 떠오릅니다. 한여름의 뙤약볕이 어미 젖꼭지에 매달린 새끼돼지들의 흰 잔등을 달구는 것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불현 듯 어디선가 얻어와 햇빛 가리개 차양으로 쳤습니다. 텃밭에는 배추와 쪽파가 심겨졌습니다. 국유지라 개발의 광풍을 피할..

나의 어린 벗, 우현이

벗이란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이릅니다. 우현이는 저와 한 세대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벗입니다. 사진 속의 우현이는 초등학교 입학 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본관을 오르는 계단 입구 난간에 축구공을 옆에 끼고 포즈를 취했습니다. 잔디는 아직 누렇고, 화분에 꽃이 심겨진 것으로 보아 초봄으로 보입니다. 우현이는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노는 날이면 이렇게 아빠·엄마 사무실에 나타나 뛰어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우현이의 아빠를 만난 다다음해에 우현이는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김포에 살던 시절, 우현이네 집과는 버스 두세 정거장 사이였습니다. 우현이는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땅 미술사학의 태두 고유섭 선생의 아호와 같습니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미술의 근대적 ..

토종약초 향토전문가

위 이미지는 사무실 앞 경사면에 심겨진 맥문동을 8월 5일 아침에 찍은 사진입니다. 맥문동은 상록 다년생 초본으로 반그늘이나 햇볕이 잘 드는 나무 아래에서 잘 자랍니다. 사무실이 산자락에 자리잡아 항상 나무 그늘이 드리워 맥문동한테는 아주 좋은 생육환경입니다. 꽃이 한창입니다. 열매는 10 ~ 11월에 익으며 푸른색으로 껍질을 벗기면 검은 종자가 드러납니다. 맥문동(麥門冬)은 뿌리가 보리와 비슷하고 잎은 차조와 비슷하며 겨울에 얼어죽지 않고 살아남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구(韭)라는 명칭은 잎이 부추를 닮았기 때문이며, 겨울을 잘 견딘다하여 인동(忍冬)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뿌리를 음식 대신 먹을 수도 있어 여랑(餘稂)이라기도 합니다. 맥문동은 덩이뿌리를 소염, 강장, 진해, 거담제 및 강..

갈매기도 도시인을 좋아한다

파란 바다가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사진의 바다는 분명 동해가 아닌 제가 거주하는 주문도 앞 바다로 황해입니다. 물빛이 맑고 파란 것으로 보아, 조금 때 찍은 사진입니다. 오후 2시 출항을 앞두고 주문도 선창에 배를 대는 정경입니다. 12호는 톤수가 393T, 정원은 400명, 차량은 42대를 적재할 수 있는 작지 않은 카페리입니다. 뱃전의 섬처럼 보이는 봉우리는 꽃치입니다. 분명 먼 옛날에는 작은 무인도였을 것입니다. 한강의 퇴적작용으로 모래가 쌓이면서 자연적으로 아차도와 연결되었습니다. 배 뒤로 길게 늘어선 섬이 3대 관음도량 보문사로 유명한 석모도입니다. 주문도에서 본도인 강화도까지 1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주문도 앞바다에 정박한 배는 아침 7시에 출항, 아차도, 볼음도를 들르고, 곧장 강화도로 ..

다랑구지를 아시나요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층층으로 되어있는 좁고 긴 논'을 다랑논이라고 합니다. 다랑논의 지역 사투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다랭이, 다랑치, 다랭이 논, 삿갓배미, 다락배미, 다락 논... 등등. 서해의 작은 외딴 섬 주문도에서는 '다랑구지'라 부릅니다. 제가 사전적 의미의 진짜 다랑구지를 본 것은 15여년전 지리산 자락의 문화유산을 답사하던 중 피아골의 연곡사를 찾아가던 길 이었습니다. 그때 교통이 불편한 산골 마을에서 편의를 봐준 당치마을 이정운 이장님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장님은 두 가지 얘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하나는 피아골의 단풍이 유난히 붉은 것은 빨치산의 피가 배어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피아골 삿갓배미의 유래 입니다. '옛날 한 농부가 김매기를 하다 쉬던 중 자기 논의 ..